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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이목 Oct 11. 2024

생동하는 모든 것엔 뿌리가 있다(4)

소설

 “에녹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놀란 남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여전히 수화기에선 경적만 들려올 뿐 에녹은 말이 없었다. 혹시 사고라도 난 걸까. 남우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휴대전화만 내려다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119! 119에 신고부터 해야.......”

 “오빠.”


 에녹의 부름에 급히 전화를 끊으려던 남우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갈 길을 잃었다.


 “응! 에녹아! 괜찮아? 사고 난 거야? 그래?“

 “아니야. 그런 거.”


 예상외로 에녹의 목소리는 침착하다 못해 태연하기까지 했다. 허둥대는 모양새만 보면 오히려 남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착각할 정도였다. 남우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정말 괜찮은 것 맞아? 하지만 분명 큰 소리가.......”

 “옆 차에서 난 소리야.”

 “응?”

 “바로 옆에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지 뭐야. 아, 오빠. 나 거의 도착했다. 끊을게.”

 “.......”

 “곧 봐.”


 전화는 곧바로 끊겼다. 남우는 벙찐 채로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미심쩍은 감정이 들기는 했지만,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할 정도의 뚜렷한 명분은 없었다. 애꿎은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던 남우는 이내 침대로 던져버리고는 욕실로 향했다.


 그러나 남우의 우려는 적중했다.

 조금 전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웠던 에녹은 놀란 심정을 추스르기 위해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남우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그대로 핸들에 머리를 묻었다.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뒤늦게 손이 떨려왔다. 애써 태연한 척 내었던 목소리의 진위를 남우가 눈치챘을까.

 아니, 에녹에겐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서둘러 휴대전화를 이용해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에녹은 ‘김에녹 개인전’을 검색했다. 금세 관련 기사들과 연관 이미지들이 쏟아져나왔다. “게다가 제일 위에 뜨는 블로그라 못 봤을 리가 없다고.......” 남우의 말을 회상한 에녹은 가장 상위에 게시된 블로그를 빠르게 찾았다.


 서양화가 김에녹 개인전 - 가식적 허울에 갇혀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한 진정성, 마치 뿌리처럼.


 개인전에 대한 정보와 기대를 품고 있는 기타 블로그와는 달리 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긴 글은 그것뿐이었다. 제목을 누르고 화면이 바뀌는 시간이 에녹에겐 억겁으로 느껴졌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었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는 글자 하나하나가 바늘이 되어 에녹의 심장을 뚫고 들어갔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전시에 말을 얹는 건 분명 나의 오만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전의 소개 글만 보아도 전시되었을 그림들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건 불가항력적 경험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나의 의무를 다해보려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 김에녹은 ‘자신의 살점이 아닌 영혼의 성장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선 하나, 칠 하나에 단 한 순간도 진심을 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거짓되다. 사실 ‘뿌리’라는 제목에서부터 피어나오는 모순에 나는 웃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은 그저 작가의 살점과 가심(假心)만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진심을 탐구할 수 있는 훌륭한 예술적 도구를 가지고도 작가는 그동안 감정의 심연이 아닌 이상을 모방하는 데 사용해 왔다. 여전히 가식적인 겉치레에 머물러 화려한 색감과 복잡한 구성으로 관람객의 시야를 현혹하는 작가의 행보에 탄식을 금할 길이 없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불투명한 공간 속 자리 잡은 나무. 그 가지에 맺힌 것이 농익은 열매인지 대류하는 안개에 가려진 불티인지 알 수 없다.


 애초 작가의 캔버스 속엔 진심이 뿌리내리긴 한 것일까?


 평론을 마무리하는 열 글자가 끝내 에녹의 심장에서 피를 모두 빨아내고 말았다.


 문화예술 평론가 주해수


 에녹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혔다. 그녀의 심정을 알 리 없는 가을 하늘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그 평온함을 배경 삼아 룸미러에 매달린 작은 십자가가 에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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