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학생을 향한 호기심 어린 웅성거림은 대현이 출석부로 교탁을 두어 번 내려치는 소리에 금세 수그러들었다.
“자. 조용. 너희들 방학 동안 고삼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어떻게 이 층에서 우리 반만 이렇게 소란스러워? 아무리 개학식이라도 말이야...... 내가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겠다.”
오랜만에 만나 새로운 환영식은 뒷전, 잔소리부터 늘어놓고 보는 대현 앞에서도 아이들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사실 대현의 인색한 언사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 1학기 기말고사 당시 1반이 전 과목 평균 1등을 했음에도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여기서 만족하는 건 하등 소용이 없다며 되레 기를 죽이는 것이었다. ― 아이들의 머릿속은 각기 다른 생각들로 가득했다.
“반장. 인사할까?”
그런 대현의 매정함도 누그러질 때가 있었는데 그건 오로지 에녹을 대할 때뿐이었다. 에녹은 입학과 동시에 모범 학생으로 선생님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기를 2년이 지나 마침내 에녹의 반을 맡게 된 대현은 에녹을 반장으로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범생의 기준이 에녹이 되다 보니 다른 동급생들은 대현의 인정을 일찍이 포기한 상태였다. 우수한 성적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아우르는 유연한 포용력과 그 속에 숨은 담백한 통솔력, 게다가 호감형 외형까지 갖춘 에녹은 성인의 시선에서도 완벽한 인간상 그 자체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에녹은 품위 있게 일어나 외쳤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인사를 하며 긴 생머리에 가려졌던 에녹의 얼굴이 허리를 세우며 다시 햇살 가운데 놓였다.
동시에 에녹은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낯선 까만 눈동자는 새로운 동급생에 대한 호기심을 담고 있다기엔 정확히 에녹이라는 사람 자체에 목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만큼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당사자는 제법 태연했다. 사실 누군가가 저를 빤히 바라보는 행위는 에녹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보통 그런 이들은 얼마 안 가 에녹을 따르는 무리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시선만으로도 에녹에게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을 맞추는 재능을 터득하곤 했다.
전학생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니 분명 첫눈에 저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으리라.
그런데 단지 그것뿐일까? 에녹은 의문이 들었다. 전학생의 눈동자 속엔 경외심의 그림자에 가려진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만 같았다. 에녹은 동요하는 마음을 숨기며 한편으로는 전학생의 진짜 목적을 파악하려 애썼다. 저를 샅샅이 파헤칠 듯한 까만 시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들으려 감각을 기울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순간 에녹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버린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다 인사를 마치고도 여전히 선 채인 자신에게 대현이 건넨 말임을 알게 됐다.
“아...... 작문 과제는 오늘 걷어서 제출해야 하는 건가 해서요.”
“원. 급한 것도 많다. 그건 새 친구를 소개하고 나서 따로 공지할 테니 앉아도 돼.“
에녹은 멋쩍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전학생의 시선도 에녹의 위치에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이쯤 되니 에녹은 슬슬 기분이 상했다. 왜 저리 빤히 쳐다보는 거지? 그 때문에 개학식 첫날부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어리숙한 행동을 보이고 말았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에녹은 남몰래 뺨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새 옅게 배어 나온 땀이 손끝에 묻어났다.
“보다시피 오늘 전학생이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전학인가 싶겠지만 개인 사정이야 각자 다른 거니 괜히 추궁하며 귀찮게 할 생각 말고. 알겠지? 자. 인사하고 들어가자.“
대현이 찌푸렸던 미간에서 힘을 빼며 전학생을 바라보았다.
“이름은 주해수고, 강춘에서 올라왔어. 너무 시골이라 어딘지 설명하기가 어렵네...... 아무튼 잘 지내보자.”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담백한 첫인사였다.
어깨를 스치는 길이에 층이 많은 머리칼은 끝이 이리저리 휘어있었다. 자유분방한 머리 모양과는 달리 해수는 내내 무덤덤한 표정을 고수했다.
대현이 홀로 튀어나온 맨 뒷자리를 가리켰고 해수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마침, 반에서 가장 키가 큰 해수는 전학 때문이 아닌 어쩔 수 없이 3년 내내 맨 뒷자리를 차지하게 된 재학생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 그리고 해수는 미술부에 들기로 했으니까 CA(*Club Activity 동아리 활동) 시간에 미술실로 잘 안내해주고. 그래. 마침 반장이 같은 미술부지? 잘됐네.“
대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녹의 고개가 대각선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 시선 끝엔 턱을 괸 채 심드렁한 표정의 해수가 있었다. 뒤늦게 에녹의 시선을 눈치챈 해수가 눈을 맞추며 몸을 세웠다.
에녹은 저와 가장 먼 자리임에도 바로 옆에 앉은 양 해수의 시선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불쾌한 첫인상 후 제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 미술부까지 침범당한 에녹은 해수가 여전히 마뜩잖았다. 멀미가 난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