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거리 안 두면 '파나마 선적' 입항 금지..왜 무서운 제재일까?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 Federal Maritime Commission)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FMC는 미국 해상 무역을 규제하는 정부 기관인데, 미국 국방부와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해운 관련 법을 집행하고, 해운 관련 부정행위를 조사하는 역할을 합니다.
평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이 기관이 최근 '파나마 운하 논란'의 핵심 부서로 떠오르면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FMC의 루이스 솔라 신임 위원장이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나마와 중국의 유착을 막아야 한다"라고 밝히면서 '미국이 파나마 운하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파나마 운하 논란, 역시 '미중 패권 전쟁'의 일환으로 봐야할까요?
I❶ 파나마와 중국은 이미 '절친'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라고 했고, 호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의 통제와 관련된 주권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사실상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 이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한 미국이 단계적으로 운영권을 넘겨줄 때 했던 두 나라의 협정을 위반한 것이니 다시 돌려받아야겠다"
특히 취임사에서더 “"미국은 운하를 파나마에 넘겨줬음에도 중국에 빼앗겼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사실 관계가 조금 과장됐을 수 있지만, '파나마 운하'라는 전략적 자산을 가진 파나마와 '패권 전쟁' 중인 중국의 유착을 우려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 뿐 아닙니다.
2025년 1월 말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는 운하에서의 무역 및 안보 문제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몇몇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미국이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를 직접 파나마 정부와 협상해야할 루이스 솔라 연방해사위원회 (FMC) 위원장 역시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나마가 중국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Panama has been inching closer to China”라고 밝혔습니다.
❷중국과 파나마 운하
중국은 얼마나 파나마 운하에 개입을 하고 있는 걸까?
파나마 운하와 관련해 미국이 가장 불만인 '파나마-중국 유착 케이스'는 입찰 없이 운하 양 끝에 위치한 중요한 2개의 항구 운영권을 홍콩 회사인 허치슨 포츠 PPC Hutchison Ports PPC가 가져갔다는 겁니다.
이 회사는 대서양 쪽의 크리스토발 항구 the Port of Cristobal 와 태평양의 발보아 항the Port of Balboa 을 관리 운영하는데, "파나마 운하를 사실상 중국이 운영하고 있다"라고 미국이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뉴욕 타임스는 2021년 파나마 정부의 승인으로 항구 운영권이 25년 연장되자 "중국 정부가 미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하게 되면, 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해서 공급망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CNBC와 인터뷰한 FMC의 솔라 위원장은 "중국 회사가 20년 동안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다가 계약을 갱신하면서 두 항구에 대해 연간 7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자산들은 최소 50억~7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라고 '싼 값에 운영권을 넘긴 특혜 의혹'을 거론했습니다.
또 솔라 위원장은 미국 측은 "일부 중국 기업들이 운하 통행료를 환불받고 있다"라면서 "미국 기업들은 그런 혜택이 없다"라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이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가 미국 기업에게 과도한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이 다시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던 배경 중 하나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파나마의 호세 라울 물리노 대통령은 "운하는 미국이 준 선물이 아니다"라면서 "트럼프가 한 모든 발언을 모두 부인한다. 첫째, 이는 사실이 아니고, 둘째,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의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파나마의 소유로 남을 것"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❸ 미국의 압박 카드는 '파나마 국적' 선박?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반발하는 파나마를 이번에는 또 어떤 방법으로 압박할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문제에 있어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아도 그에 못지 않은 강력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파나마 국적 선박'을 미국 항구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솔라 연방해사위원회 위원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파나마의 법률이나 정책이 미국 해운업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이 파나마 정부에 대해 상당한 규모의 일일 벌금을 부과하고, 파나마 국적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입항 금지'가 의외로 파나마에게는 왠만한 '관세 부과'보다 강력한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파나마는, 선박소유자가 파나마 국적이 아니더라도 배를 '파나마 국적'으로 쉽게 신고할 수 있는 이른바 '편의치적(便宜置籍) 제도'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선박 등록 때 취등록세는 물론 다른 세금 감면 혜택도 주는 등 각종 규제를 없애는 방법으로 다른 나라 국적의 선주들이나 회사들이 파나마 선적으로 배를 등록하도록 유치한 겁니다.
옆의 CNBC 도표에서 보듯, 이런 제도 덕분에 2024년 기준 소속 상선 숫자나 톤수를 놓고 보면 '라이베리아 선적'에 이어 '파나마 선적'이 세계 2위 입니다.
특히 1) 미국과 가깝고 2) 세금 혜택도 많고 3) 미국 화물이 주로 이용하는 파나마 운하 이용에 편리하기 때문에 미국과 거래하는, 혹은 미국 국적의 돈 많은 선주들이 파나마에 배를 등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파나마 선적의 배'를 못 들어오게 한다?
파나마 운하를 근거지로 많은 상선들을 유치해서 세금 뿐 아니라 급유, 급식, 선원 고용, 숙박 같은 큰 생태계를 만들어온 파나마 경제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PS. 파나마 운하
파나마에서 '운하 경제'는 중요합니다.
CNBC는 "파나마 운하청의 수입이 지난해 33억 8천만 달러에 달했다"라고 전했습니다.
게다가 올해 1월, 파나마 운하청은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통행료를 추가 요금 및 서비스 비용과 함께 인상하면서 수입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하지만 파나마 운하는 미국에게도 못지 않게 중요한 자산입니다.
CNBC는 "미국 동부와 서부를 나르는 화물을 포함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수출하는 미국 컨테이너 화물의 40%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며, 전체적으로 연간 2700억 달러 규모의 화물이 이곳을 지나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군사 안보 면에서도 미국은 파나마 운하가 꼭 필요합니다.
아시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국 동부에서 출발하는 군함이나 보급선이 이곳을 지나야 하고, 유럽에 분쟁이 생기면 미국 서부에서 출발하는 미국 배들이 이곳을 지나야 합니다. 아니면 저 멀리 남미 대륙 아래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른 나라가 보기에 얼핏 과도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치권, 미국 군부의 파나마 운하 논란은, 예를 들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준비를 해놓고 파나마 운하를 막아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위기 의식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가볍게 흔들어 놓고,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은 EU까지 두렵게 만드는 데 성공한 트럼프 행정부의 거침없는 행보.
이번엔 차이나머니에 이미 길들여져 있는 파나마 압박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