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쓰기 12
‘뇌신’이다.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약 이름. 어린 한때 뇌신이 없으면 살 수없던 시기가 있었다. 동네의원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다. 당시 폐렴은 무서운 병이었다. 주사와 약이 치료의 전부였다. 엄마는 몇 킬로미터나 되는 읍내까지 매일 나를 업고 다녔다. 시내 버스비도 없던 가난이었다. 삐쩍 마른 커다란 아이가 업혀 다니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끌끌 혀를 찼다. 나는 기침과 가래가 심했고 머리가 아파 일어날 수 없었다. 학교도 휴학 했다. 차도가 없어 병원에 다니는 것도 포기했다. 그렇게 누워 머리가 아플 때마다 삼켰던 하얀 가루가 ‘뇌신’ 이였다. 밥보다 더 많이 먹었다. 아직도 그 쓴맛을 잊을 수 없다.
셋방 집주인 할머니가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알던 사람도 저런 증상이었는데 죽었어요. 우리집에서 큰일 치르지 말고 방 빼요.” 엄마 가슴이 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진료받으러 갔다. 동네 의사가 내린 진단명은 틀렸다. 나는 전혀 다른 병을 앓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치료 시기가 늦지는 않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고 일주일쯤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입원과 함께 더 이상 ‘뇌신’을 먹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뇌신’은 진통제다.
60대가 되니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하나씩 늘어난다. 처음 정기적으로 약 하나를 먹기로 할 때, 건강관리에 소홀한 자신을 책망했다. 앞으로 열심히 운동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은 그냥 다짐으로 끝났다. 어제와 다름없이 보내는 일상은 또 다른 약 하나를 추가했다. 이제는 더 이상 약을 추가하지 말아야겠다고 또 다짐했다. 매일 산책할 것. 밥을 먹고 바로 눕지 말 것. 탄수화물을 많이 먹지 말 것. 일찍 잠들고 충분히 잘 것. 스트레스받지 말 것. 삶이 다짐대로 된다면 무슨 걱정일까. 시시로 먹고 싶은 음식은 나를 유혹한다. 날이 너무 덥거나 추워서 등 산책을 하지 못할 핑계는 매일 생긴다. 늘어난 약은 개수를 줄이지 못한다. 늙어가면서 하나씩 더 추가 할 뿐이다. 다만 그 시기를 늦추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