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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나란히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by 도인

“몇 시에 일어났어?”

아침 햇살 속,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발코니로 나온 H가 묻는다.


“다섯 시쯤?”


“왜? 잠이 안 와? 요즘 수면 패턴이 좀 바뀐 것 같아서…”


“아니야, 잘 잤어. 걱정 마.”


내가 불면증으로 오래 고생한 걸 아는 H는 매일 아침 나의 눈빛과 얼굴을 살핀다. 그리고는 내 컨디션에 따라 미리 계획했던 하루 일정을 살짝 바꾼다.


상쾌한 바람이 분다. 오늘도 그다지 덥지 않을 것 같다.

연한 초록, 짙은 초록.

이곳 남국의 조경은 늘 색이 깊고, 생기 가득하다.

나무들은 햇살과 물을 한껏 머금고 제 존재를 뽐낸다. 어디선가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은 꽃향기를 데려온다.


발코니에 앉아 멀리 하늘을 바라본다.

말없이, 그저 가만히.

존재하는 시간.


“저기 보여? 지붕 위에 도마뱀.”

H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응, 보여.”


“꼬리 봐. 몸통의 세 배는 되겠는데?”


말없이 그 도마뱀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본다.

지붕 끝에 닿고, 결국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난 여행 이제 좀 귀찮아. 씨엠립 가면 그냥 너 졸졸 따라다닐 거야. 골든리트리버처럼. 넌 MBTI 대문자 J잖아. 은퇴하고 여행도 10년째 했고. 난 그냥 너 하자는 대로 할 거야.”


아냐!! 나 졸졸 따라다니지 말고, 나란히 걷자.

자전거도 타고, 사원도 돌고.”


‘Side by side.’

그 말에 문득 장기하의 노래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갖 좋은 걸 해줬지만, 결국엔 헤어지고 나서야 깨닫는 노래.

“그냥 나란히 걷기나 할걸.” 하는 후회의 노래.


나도 그랬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들을 건넸다.

그 사람이 원한 건 단지, 함께 걷는 거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옆에 있어주는 거였을 텐데.


마음을 단단히 다시 다진다.

그래. 그냥 나란히 나란히 걸어야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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