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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의 하루 Nov 15. 2023

2주차 - 선명한 두 줄

아내와 나는 예전 연애 시절부터 아기 태명을 ‘모모’라고 짓기로 약속했었다. 우리 둘 다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기를 낳기까지 결혼 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오래전 약속된 태명을 이제야 아기에게 실제로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주를 다 채우기도 전에 아내는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9일 차부터는 아내가 아침마다 임테기를 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느긋한 입장이었는데 어차피 결과는 무언가로 정해져 있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게 느껴졌다. 검사 결과가 제대로 나오는 2주를 다 채우고 해보자고 했지만, 아내에게는 하루라도 일찍 아기가 찾아왔는지 확인해 보는 게 중요해 보였다. 정말 말 그대로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오길 기다리는 인내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3일 차 됐을 무렵 임테기에서 두 줄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첫날은 너무 희미해서 두 줄이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출근을 준비하던 도중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아주 희미한 줄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연한 줄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아침 6시 반, 우리는 바쁜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다음 날은 전보다 더 진해진 두 줄이 나왔다. 조금 더 선명해진 두 줄만큼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왔다는 사실도 분명해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임신을 확정받기 위해 주말에 산부인과로 찾아갔다. 아내는 혈액검사를 받았다. 혈액 검사를 하고 5시간 정도 지났을까? 너무 긴장과 기대를 많이 했던 탓에 피곤했는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낮잠에 빠져있었다. 누군가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내에 걸려 온 전화였다. 보지 않고도 병원에서 온 전화임을 알 수 있었다. 세상 모르게 깊은 낮잠에 빠진 아내를 흔들어 깨우며 빨리 전화를 받아보라고 재촉했다. 우리는 어느새 임신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병원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야 기쁨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너무 급하게 전화를 받는 바람에 이 순간을 스피커폰으로 나와 같이 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받는 아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병원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아내는 웃음과 울음 그 사이에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때 살짝 보인 것 같았다. 조만간 우리는 웃음과 울음 사이에 저런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을 우리의 미래가. 병원에서는 호르몬 수치가 400으로 매우 높게 나와 임신이 확실하다고 전해왔다. 우리는 전화를 끊고 다시 한번 서로를 꼭 끌어안아 줬다. 이제부터는 우리 둘의 포옹이 아니다. 아가와 함께 우리 온 가족은 서로서로 끌어안았다. 


병원에서 판정받고는 조금 이르지만 양가 부모님을 찾아갔다. 처가댁에는 아내가 이미 전화로 연락을 해둬서 가벼운 축하를 받았다. 평소 표현을 안 하시는 장인어른이 아내를 꼭 껴안으며 ‘고생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기셨다. 보는 나도 왠지 모르게 뭉클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내 부모님에게는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임신 사실을 전해주자는 의견을 냈다. 작은 선물 박스에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넣어서 가져갔다. 선물이라면서 무심하게 엄마한테 줬는데, 박스를 열어본 엄마의 표정은 내가 평생 거의 본 적 없는 놀람과 밝은 표정. 아마도 아기였던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엄마가 짓던 표정이 아닐까, 싶은 그런 표정이었다. 평소 우리 부부에게 아기 이야기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서 이렇게 좋아하실 줄을 몰랐다. ‘어머, 어머’ 하면서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축하한다는 이야기 뒤에도 엄마는 임테기에 선명한 두 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박스에 다시 넣었다가도 다시 꺼내서 보셨다. 엄마가 그러면 이건 가지고 있어도 되냐고 물으셨다. 아마도 내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일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엄마의 표정과 그 순간을 찍어두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래서 짧은 글이라도 이렇게 남겨본다. 후에 이 순간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니, 몇몇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소변이 묻은 임테기를 부모님에게 보여드리는 건 좀 이상하지 않냐는 의견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그런 사소한 것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빛나는 눈과 웃음 짓는 엄마. 박스를 들고 있던 엄마의 표정은 내가 기억하던 엄마의 첫 모습, 지금의 나와 나이가 같은 30대 엄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커버 이미지 : 사진: UnsplashSincerely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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