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가고, 또다시 하루가 간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월이 아쉽고, 안타깝고, 아련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미워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 형제, 가족들과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릴 적 고향 바닷가에서 보던 석양과 요즘의 내 모습이 닮은 듯하여 마음이 서글퍼져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아 마냥 나이를 한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나온 날들에 후회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세월의 흐름 속에 지금의 우리는 그래도 조금은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60대인 나와 주변 사람들의 대화 속엔 그저 아프지 않고, 가족들 힘들게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말이 흔히 등장한다.
나이 들어 하루 세끼 빠짐없이 집에서 챙겨주길 바라는 삼식이가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고,
이제는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며 보고 싶은 사람들 가끔 얼굴 보며 사는 거지 뭐- 라고 말하다가도 다 부질없는 일이다 싶다.
근심 걱정 없이 살기 위해 발버둥도 많이 쳤다.
출세도 하고 싶었고, 명예도 얻고 싶었다. 설령 이 모든 것들을 조금씩이나마 누려 봤을지라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내 것이 아닌 것과 버릴 것은 과감히 내려놓아야지 하면서도 그러지를 못하는 황혼에 놓인 우리.
나이가 들면 한적한 곳에서 낚시도 하고, 뒷산에 올라 좋은 공기 마시며 살고 싶었던 지난날의 생각들이 공허한 기대였나 싶은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삶이라는 무게에 억눌려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들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과거의 낡은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과 생각으로 우리의 힘들었던 지난날을 달래 본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라는 마음으로 위로도 해보며.
비록 우리가 여전히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고는 있어도 인생을 다 소진한 것처럼 살아가서는 안 된다.
흰머리가 많아지고, 몸에 힘도 없어지고, 팔다리 근육은 점점 쑤시고 아프며, 기억력도 약해진다.
그럼에도 황혼의 꿈을 잊지 말자.
어느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밤새워 시청하며 저들의 열정과 용기에 다시 한번 힘을 얻는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 식을 줄 모르는 감정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줄 알았던 젊음까지 느껴진다.
나에게 그 시절이 다시 올 수는 없겠지만 대신 나에게 다가온 황혼의 매력을 찾으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소한 것들에 굳이 힘쓰지 않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 그저 들려오는 소리를 잘 들으면 되고,
이가 아프면 먹기 편한 음식을 적게 먹는 것도 좋겠다.
다리가 힘들면 천천히 조심히 걸어가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 굳이 살아온 세월을 전부 다 기억할 필요는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요즘 따라 혼자 있는 시간에 더 많은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정말 황혼인가 보다.
이제는 아내 손을 가끔 살포시 잡아 보기도 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싶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함께 무언가를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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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 동네 한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옆 테이블의 대화 내용이 다 들릴 정도로 작은 식당이었는데 그날은 70대 정도 될 것 같은 남자 두 분이
소주에 삼겹살을 드시고 계셨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답이 하나겠냐 둘이겠냐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는 중이었다.
하나라고 하는 분은 상대에게 '너는 세상을 넓게 보지 않아서 그렇게만 생각하는 거야' 하며 핀잔을 주고,
둘이라고 하는 분은 '너는 학교에서 산수도 안 배웠냐'며 당연히 1+가 맞다며 핀잔을 주신다.
약간의 취기가 오르신 상태였는데 그분들의 대화에 잠깐이나마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다.
언뜻 들으면 그저 웃겼을 대화가 오히려 많은 뜻을 담긴 것처럼 들렸다.
나도 나이가 더 들면 언젠가 저런 대화를 나누게 될까.
살아오며 알게 된 많은 것들 외에도 정작 스스로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더 와닿는다.
아쉬움과 물음의 시간이 맴돌고 있다.
시간과 함께 우리도 흘러왔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
황혼의 세월에 놓인 우리 모두가 앞으로도 아름답게 물들어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