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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Mar 16. 2022

육식주의자의 채식 12일…두부에서 돈까스를 느꼈다

발리 요가 ytt(9)

발리 요가스쿨 생활 중 가장 낯설었던건 음식이다. 채식, 그것도 뒤돌아서면 배고플만큼 적은양으로 하루 세끼를 채웠다. 먹고싶은게 있으면 다 시켜서 2~3인분은 먹는 대식가인데, 고기없으면 밥먹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육식주의자'인데, 하루 세 끼 다해봐야 평소의 한 끼 정도 되는 양으로 12일을 버텼다.


고기, 생선류는 냄새도 맡지 못했다. 두부, 참페이, 계란 정도로 단백질을 공급했다. 계란은 내게 한줄기 빛이었다. 탄수화물은 최소한만 줬다. 한 두숟가락 정도... 다양한 종류의 풀떼기들로 주린 배를 채웠다.


나는 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 1위한우구이다. 여기에선 어떤 소고기를 먹어도 한우 맛이 안난다. 삼겹살은 여기에서 그나마 비슷하게 하는 한식당이 있다. 고기를 2주 가까이 먹지 않은건 아마 고기를 입에 댄 이후 첫경험이 아닐까 싶다.


요가에서 고기를 멀리 하는 이유가 있다. 고기를 먹으면 정신이 산만해진다고 한다.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고기를 많이 먹으면 폭력성이 강해진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선 채식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지만, 수천년 전부터 요가를 해온 역사와 경험이 쌓인 지혜일테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일 것이다.


도저히 못할 것 같았던 채식을 묵묵히 이어갔다. 수강생 중 일부는 일과를 마친 뒤 요가스쿨 밖으로 나가 편의점 등에서 육식을 보충하기도 했지만 나는 최대한 버텼다.  


몇일동안 채식을 하다보니 점차 적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뇌를 당한건가, 마음도 더 평안해지고 한국 친구들과 카톡할 때도 괜히 더 온순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살빠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요가를 하며 하루에 수리터씩 땀을 쏟는데 먹는게 풀떼기 뿐이니 하루에 1kg은 빠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요가스쿨에 저울이 없고, 지금 제대 후 옮긴 호텔에도 저울이 없어서 얼마나 빠졌는지는 모른다.


채식도 먹다보니 맛있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소스가 입맛을 돋궜다. 두부구이 조각에 돈까스 소스 같이 생긴 브라운소스가 올려져서 나온 적이 있는데, 돈까스를 먹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일주일 쫌 지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고기를 아예 안먹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까지 생겼다. 뭐든 극단적인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요가 자세를 할 때도 몸이 견딜 수 있는정도만 하라는데, 내 몸이 고기없이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몸보다는 정신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스트레스, 채소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기의 그 맛이 그리웠다.


하지만 꾹꾹 참았다. 평생 고기를 안먹을 것도 아니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요가수련 기간만큼은 한시적 채식주의자가 됐다.


결과적으로 살이 많이 빠졌다. 얼굴 살이 쏙 들어갔다. 피부도 좋아졌다. 여드름이 사라졌다. 최근 10년 내 가장 좋은 피부상태다.


오늘 요가스쿨에서 제대한 후 우붓으로 거처를 옮겼다. 어젯밤에 고심끝에 정한 한식집으로 달려갔다. 한식은 거의 3주만이다. 삼겹살 2인분, 제육볶음 1인분, 치킨까스, 치즈라면, 순두부찌개, 맥주까지 먹고 싶은 걸 다 시켜서 실컷 먹었다. 밥먹은지 8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배부르다.


이것으로 나에 대한 정신적 보상은 끝났다. 내일부터는 다시 균형잡힌, 적당한 식습관을 유지할 생각이다. 채식도 간헐적으로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채식에 대해 조금이나마 긍정적 시각이 생긴 것, 요가수련 성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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