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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Sep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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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한편에 장비를 내려놓았다.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진다. 존재하지 않아야 할 물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나 원래 있던 것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분이다. 어쩌면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다짐했음에도 어느새 기대라는 감정을 집어넣었는지도 모르겠다. 밤이 깊어갈수록 정신은 오히려 선명해져만 간다. 티브이를 켜자 토론 프로그램이 재방송을 하고 있다. 평소라면 채널을 돌렸을 테지만 주제를 보니 그럴 수가 없다. '가상현실의 일상화, 일 년 후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 찬반을 놓고 열띤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찬성을 하는 A 쪽에서 의견을 드러낸다. " '가상현실'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생소함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거부감을 드러내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새로움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곤 하니까요. 사람의 뇌가 무언가에게서 익숙함을 느끼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긴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일상을 보세요. '가상현실'은 삶 깊숙이 파고들어 와 더 이상 낯선 무언가가 아닌 익숙함 아래 일상을 바꿔놓았습니다. '가상 데이트'즉 그런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상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연애 정보회사가 나온 지 일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에서는 그런 일들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는 의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앞서 언급해드린 설명이 말하고 있듯이 어느새 이런 일들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고 우려 또한 잠잠해질 것입니다. 자. 지금 보여드리는 것은 토론이 있기 전 즉 어제까지의 날짜를 토대로 종합한 데이터입니다. 한 연애 정보회사의 가입자 수와 신규 가입자 그리고 실제 성사율 지수입니다. 가입자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그와 비례해 연애, 나아가 결혼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수치 또한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지표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시간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후회를 하는 일이 사라질 것입니다. 각자가 원하는 사람을 손쉽게 만날 수 있게 되는 거죠."


잠자코 듣고 있던 B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먼저 '가상현실'이 우리의 삶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냈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침범하지 않아야 할 영역에 국한되어 왔습니다. 일 년 전 생겨난 연애 정보회사를 통해 사람들은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보이는 겉면, 데이터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누군가를 통해 전체를 판단할 뿐입니다. 이런 일들의 문제점이 지금의 우리 세대에서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낼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은 세대와 디지털만을 경험한 세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비단 이런 문제만에 해당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직접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맞춰나간 일들을 경험한 지금의 세대는 이런 일들이 꽤 흥미롭고 신선한 일들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다음 세대에서 그런 일들이 일상화가 된다면 삶은 더욱 삭막해질지 모릅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자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그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을 한 것이다. 사실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양쪽의 팽팽한 의견이 서로 대립을 이루다 이내 타협을 한 것 같지만 그럴듯해 보일뿐 여전히 서로의 주장에 더 힘을 실 어보일뿐이었다. 처음 '가상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연애 정보회사가 생겨나자 수많은 언론들은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에 맞춰 의견들 역시 부정적인 의견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수록 부정적이던 여론은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종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의 시간만 투자하면 원하는 이성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 당시 관련 기사를 접하던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까지 해서 만난다는데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름 각자의 방식대로 노력을 하는 것이고 나로서는 그런 노력조차 할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멀게만 느껴지던 일들이 일 년이 지난 시점 나에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끄자 거실은 또다시 고요함 속으로 빠져든다. 안방으로 들어가 블라인드를 최대한 내렸다. 몇 시간 후 마주할 햇빛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이다. 푹 자고 싶다. 지금은 너무 많은 생각들이 한데 뒤섞여 균형을 잃은 기분이다. 푹 자고 나면 아주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더해본다. 이불속으로 파고들자 따뜻함이 나를 감싼다. 

눈을 뜨게 된 시각은 오후 세시이다.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이른 시간 눈을 떴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이불속에서 뒤척이며 보내다 확인한 시간이 오후 세시였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블라인드를 움직이자 각도에 따라 햇빛이 방안을 비춰내다 가려내길 반복한다. 이내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리자 방안은 햇빛으로 가득 찬다. 햇빛에 눈을 찡그리고 말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 준 것 같기도, 거실로 나오자 지난밤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허상이 아닌 실제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기지개를 켜자 흩어져 있던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청소를 해야 될 것 같지만 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느껴진다. 먼저 밥을 먹어야겠다. 

반찬들을 꺼내어 밥을 먹고 있을 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주말인데 집에만 있는 건 아니지? 나가서 사람들 좀 만나고 바람도 좀 쐬고 그러렴." 하루 종일 집에서 쉴 계획이지만 나의 계획을 그대로 드러냈다가는 분명히 통화가 길어질게 뻔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갈 예정이에요" 수화기 너머로 웃음을 짓는 어머니의 얼굴이 그려진다. "저번에 이야기했던 것들 기억하고 있지?, 아버지하고 엄마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네가 짝을 찾아서 잘 만나고 우리한테 소개도 시켜주길 바라는 거 그게 전부일 뿐이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시라니, 그런 생각들 조차가 나에게는 큰 영역의 어디쯤이다. "아, 알아요 저도 다 큰 어른인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알겠다며 통화를 끊으려다 말고 갑자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요즘 가상현실이다 뭐다해서 삶이 더 좋아진 것은 알겠는데 그런 걸 통해서 사람들이 정말 만날 수 있다니?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직접 만나 마주 봐야 다른 감정도 생길 텐데 어떻게 만나지도 않고 다 파악을 할 수 있겠어" 순간적으로 뜨끔했지만 자연스럽게 통화를 종료했다. 

때로는 솔직해지지 않을 때도 필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정리를 하자 어느덧 오후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다. 일어나 밥을 먹었을 뿐인데 하루의 절반 이상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흘러가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든다.
소파에 앉아 장비를 꺼냈다. 아직은 서투른 손동작으로 접속 준비를 한다. 

이내 익숙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번에는 '일상'적인 데이트를 클릭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이번에는 집 근처 번화가에서 시작이 된다. 여전히 가상현실에 대한 신기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로 새로이 생겨날 뿐이다. 내 곁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어디선가 실제로 마주했던 것 같은 감정이 든다. 사실일지 그렇게 착각할 뿐인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진다. 이내 가방 속에서 느껴지는 진동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안을 뒤적거리자 휴대폰 화면에는 '김민지'라고 저장되어있는 번호가 뜬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몇 초간 생각을 해봐도 분명히 처음 듣는 이름일 뿐이다. 전화가 끊어지기 전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위치상으로는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은데 앞쪽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차가 많이 막히고 있어요. 세시까지는 충분히 카페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미리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혹시 벌써 도착하신 건 아니시죠?" 의아함에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만나기로 했다고? 그것도 오후 세시라니' 곧바로 왼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바라보자 두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 만나기로 한 카페라는 곳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걸까. 고민을 하는 사이 다시 한번 수화기 너머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제말 안 들리세요? 뭐야, 왜 아무 목소리도 안 들리는 거야. 며칠 전에 고쳤더니 또 이상해진 거야?" 그 말을 듣고서는 재 빠르게 "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잘 들렸어요 잠시 동안 다른 생각을 하느라 답을 못했네요.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위치를 물어볼까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상현실이라면, 그러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의 설정이 진행되는 거라면 아마도 내가 즐겨가는 카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확신이 가득 찬 말을 내뱉어본다. "이 시간쯤이면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제가 먼저 가서 음료를 시켜둘게요." 그러자 상대방은 자신이 말한 것들을 내가 다 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렇긴 하겠네요. 그럼 저는 카페라떼 아이스로 해주시는데요. 디카페인으로 변경하고 우유는 두유로 변경해서 부탁드릴게요. 당연히 시럽은 빼고요." 구체적인 주문에 당황스러움이 밀려오던 것도 잠시, 나와 같은 음료의 취향이라는 것에 반가움이 밀려든다. 웃으며 말을 건넸다. "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조심히 오세요" 지금 있는 위치에서 오분 정도만 걸어가면 대로변에 위치한 카페가 나온다. 주말이면 한 번씩 업무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챙겨가거나 책을 읽기 위해 카페에 방문한다. 먼발치에서 카페의 모습이 보이자 나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창가 쪽 자리에는 빈자리 없이 가득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주친 점원은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자주 본 덕분에 뭐랄까, 내적 친분이 쌓인 기분이다. 마찬가지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곧장 앱을 통해 주문을 하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밖에서 본 것처럼 빈자리 없이 가득 찬 내부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여 나고 있다. 잠시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창가 쪽에 앉아있던 커플이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저쪽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나를 본 남자는 앉으시려고 하는 거냐며 묻는다. "아, 네 맞아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잠시 동안의 준비가 끝나자 커플은 유유히 이층 계단을 타고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소지품을 내려두고 창밖을 바라보자 지나가는 많은 차량들이 보인다. 주말이라 그런지 다들 어딘가로 떠나기 바쁜 모양이다. 앱으로 주문을 한지 십 분이 지나자 핸드폰 화면에는 음료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표시가 뜬다. 곧장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갔다. 음료 두 잔과 함께 시켰던 조각 케이크를 받아 조심스레 이층으로 올라가 본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마음속으로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이대로 넘어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난리가 날 거야. 사람들은 모두 다 나를 쳐다볼 테고 곤란함에 빠지게 될 거야. 그리고 정리를 하려고 한다면 직원들이 나서야 할 테고 골치 아픈 상황들이 펼쳐질 거야 그러니까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올라가야지' 다행히도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안도감에 웃음을 지어 보인다. 가끔씩 이렇게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물론 우려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상상들을 하고 난 뒤에는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일상에 안도감을 더해낸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 또 한 번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를 받자 "저 카페 도착했어요. 어디에 계세요?" 가볍게 주위를 둘러본다. "이층으로 올라오면 바라보는 방향에서 가장 오른쪽 창가에 앉아 있어요." 전화를 끊자 긴장감 때문인지 손에는 땀이 배어난다. 이미 음료를 시킬 준비를 하면서 기대를 더해버린 것 같다. 같은 취향,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상대방의 차분한 목소리에 말이다. 기다리는 동안은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맞춰 연상되는 상대방의 분위기를 그려냈다. 계단 쪽을 바라볼까 하다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창가 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잠시 뒤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게 느껴진다.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듯한 얼굴이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해 보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원하는 이성에 대한 정보를 저장해둔 덕분인지 한눈에 봐도 내가 그동안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모습의 상대이다. 첫 가상 데이트를 시작을 했을 때도 섣불리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닌 조금만 더 진행을 했었더라면 상대방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그럼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동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환하게 웃는 미소에 나도 모르게 몇 초간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상대방은 자리에 앉아 우선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했지만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나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그제야 놀라 아니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 실제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떡하지, 큰일이다 참..' 이야기는 막히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 가지의 소재를 꺼내면 그에 맞춰 물 흐르듯 흘러나갔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카페에 들어온지도 벌써 두 시간이 넘었어요. 저녁 드시러 가는 거 어때요?" 그 말을 듣고는 놀라 시계를 바라보자 정말 시간은 여섯 시를 향해가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누군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장 소에 머무르는 기분을 말이다. "드시고 싶은 메뉴 있으세요?" 잠시 동안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일단 다른 뜻은 없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제가 편한 분위기의 식당을 좋아해서요. 때마침 친구와 자주 갔던 백반집이 이 근처더라고요. 항상 갈 때마다 젊은 사람이라곤 저하고 제 친구가 전부일만큼 동네 어르신분들만 찾는 곳이거든요" 당연히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삼 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방학 동안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보낸 적이 있다. 워낙 나를 소중히 대해주시던 분이라 지금까지 아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의 기억 덕분인지 나이가 들수록 할머니가 손수 해주시던 반찬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제는 맛볼 수 없는 그 맛을 잊고 싶지 않아 또 떠올리고 싶어 동네를 다니며 골목길 사이에 있는 작은 백반집들을 찾아가곤 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지 삼 개월 차라 아직은 어떤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에 괜스레 기대를 더해보게 된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좋아요. 그럼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상대방은 자신이 말을 하고도 첫 만남에 혹시나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하며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좋다는 대답이 나오자 활짝 웃어 보인다. 잠시 걸었을 뿐인데 도시의 소음은 골목길 깊숙이 파고들지는 못한 모양이다. 주택가 사이로 접어들자 우리가 주고받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말 좋아하시는 거 맞으시죠?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첫 만남에 우리가 자주 가는 분위기의 식당에 데려가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나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수줍게 말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그럼요, 오히려 좋은걸요." 십 분쯤 걸어가자 가로등 아래 조그마한 간판이 보인다. '엄마네 백반집'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든다. 육십 중반에서 칠십 초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주방에서 나와 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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