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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귤 Oct 25. 2022

수족냉증이 겨울을 대처하는 방법

겨울 등산, 설산의 아름다움

초가을 손끝이 저릿해지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이른 겨울이 시작된다. 수족냉증 인간에게 겨울은 남들과 같은 시간이 아니다.


보! 며어름! 갈! 겨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울.


타고나길 유난히 차가운 몸, 그럼 좀 따뜻한 걸 먹고 마셔야 하는데 한파주의보가 발령돼도 차가운 음식을 잃지 못한다. 얼어 죽어도 잃지 못하는 아이스크림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안 그래도 차가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든다.


야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주말 맞이를 시작하는 겨울의 금요일 밤. 이불을 눈 끝까지 올려도 코끝이 시리다. ‘아이스 가이’(레몬맛이 제일 맛있다)를 먹은 나는 금요일마다 아이스우먼이 된다. 아이스우먼의 근육은 제 주인이 버린 열을 지키기 위해 끙끙 웅크리느라 겨울밤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그만 담에 걸린다. 수면 양말을 신으면 그 안으로 발가락이 얼어붙는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피부 속으로 바람이 파고들어 와 가죽 안의 뼈를 흔든다. 몸이 얼면 마음까지 급격히 얼어붙는다. 흐르는 시간도 멈춘다. 1년의 절반을 겨울 속에 살고 있다.


“설산 보러 가야지!”



따끈한 여름 햇살 아래에 누워 부드러운 소프트콘을 핥으며 말했다. 내 눈앞의 아이스크림처럼 새하얗고 눈부신 설경 사진을 보고는 꼭 가자고 약속했다. 빈말이었을지도 모를 깡통 약속은 기억 저편 구석에 잊혀 지내다가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그 바람에 차여 불쑥 요란한 소리를 낸다.





꼭 가야만 할까, 두려움에 날이 선 겨울 모험. 혼자 결심했다면 당연하게 가지 않았겠지만 지난날 달콤하고 부드러웠던 약속에 멱살 잡혀 끌려 나온다. 겨울에는 효과적인 체온 보호를 위해 옷을 겹쳐있는 ‘레이어링’이 중요하다지. 옷장 속 보온에 관련된 옷을 다 꺼내 차곡차곡 겹겹이 올리고 그 위에 패딩을 입는다. 거울을 보니 미쉐린 캐릭터 같다. 그래도 겁이 나서 일단 옷을 더 챙긴다. 이 정도 전쟁이라면 핫팩은 전투용으로다가.


“살다 살다 내가 겨울에 산을 간다니”


내면은 투덜거림으로 가득하지만 입김으로 보얗게 불만을 가려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한 거라고 했다. 추워서 웅크리는 게 아니라 웅크려서 추운 거지. 당당하게 걸어보자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에 끼운 아이젠이 뽀독한 눈에 퍽퍽 박힌다. 조금 더 강해진 느낌이 나고 이제 생각보다 춥지 않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빨강과 주황 노랑의 향현으로 가득했던 나무의 정열은 이제 모두 땅으로 떨어져 눈 아래에 파묻혔다. 주위가 고요하다. 하늘은 빛바랜 회색이고 이따금 바람이 툭툭 털어낸 구름에 남았던 눈송이가 떨어진다.



수많은 잎과 살아가던 가지들은 이제는 그것들을 잃고 그만큼의 눈을 머금었다. 상고대. 무빙이라 부른다. 하얀 솜옷을 입은 것 같기도 하다. 잎을 잃은 공허함 때문인지 본래 제 잎보다 많은 눈을 머금고 있다. 버거워보이는 그 가지를 더 가깝게 보기 위해 얼굴을 가깝게 하니 총총한 꽃눈이 박혀있다.


내 패딩보다 훨씬 얇은 그 꽃눈 속에는 내년의 꽃과 잎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들은 어떤 혹독한 바람에도 견고하게 자신들의 이파리를 지킬 것이지만 살랑이는 따스함이 신호를 주면 마음껏 만개할 것이다. 연약해 보이지만 강하다. 그들이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어쩌면 하얀 눈옷은 꽃눈을 지키기 위한 설화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혹독함 속의 고요하고 강한 발화. 그리곤 조금만 추워도 요란을 떤 나 자신이 부끄럽다.



흑과 백 속에 내가 묻혀있다. 전날 내린 폭설로 바람에 맞게 모양이 난 쌓인 눈. 그 위로 아무도 밟지 않은 순수한 눈더미는 마치 이곳이 흑과 백 태초의 세상, 빙하기의 어느 시대를 연상케 한다. 이 산들은 기억하고 있을 그 시간. 인간은 모르는 그 시간을 겨울 산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곱단이 속눈썹에 눈이 쌓이는 것처럼 내 속눈썹과 구레나룻에도 서리가 내려앉을 즈음 이대로 눈 속에 폭 파묻혀 사라질 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그때 차가운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다. 잠시 잡았다 놓은 내 손에는 온기와 함께 작은 보물이 들어있다.


바로 편의점에서 산 ‘솔티드 캐러멜 맛 초콜릿’


체온 유지를 위한 열에너지 재료로 짭짤하고 달콤한 연료를 넣으니 따뜻한 침에 녹은 황홀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추운 날 입에 녹는 따뜻한 초콜릿이 제일 맛있다.



정상이 보인다. 정상에는 벌써 각자의 눈구덩이를 파서 그 안에서 따스한 한 끼를 나누는 이들이 보인다. 강아지가 구덩이를 파듯 눈을 열심히 파서 그 안으로 쏙 들어간다. 몸을 데우기 위한 식사를 꺼낸다. 발열 도시락에 끓이는 전투식량. 라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논외다. 코를 박고 오물거리는 소리 외에 아무 소음이 나지 않는다. 콧물이 나는지 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짠걸 먹었으니 단걸 먹어야지. 눈에 잘 넣어뒀던 꽁꽁 얼은 초코 소라빵을 후식으로 먹는다. 배가 부르니 주위를 떠도는 큰 부리 까마귀가 보인다. 지난여름에 본 그 까마귀와도 같아 그동안 잘 지냈는지 의미 없는 안부를 묻는다.



추위에 대한 두려움은 겨울이 이룩한 아름다움의 외면이었다. 나는 정말 추운 것보다, 추울까 봐 그래서 더 아플까 봐 겨울이 싫었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보다 겨울 산은 춥지 않았고, 추울 땐 ‘아이스 우먼’의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아이스 가이’가 있었다. 사랑하는 것,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상처받기 싫어서 불안정하고 얕은 관계만 맺고 추운 것이 싫어서 전기장판 속에서 겨울을 보낸다면 평생 상처받지 않고 안락하며 감기에 걸리지 않는 안전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한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눈의 절경을 두 눈에 담음으로써 내가 보는 세상을 조금 더 맑고 밝게 만드는 빛을 흡수할 기회 그리고 성장이 멈춘 성인이 다른 인간과 정서적 유대관계를 구축하며 이루는 신체 외의 성장을 이룬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겉에서 만지면 차가웠지만 안에서 느끼면 따뜻했다.


급격하게 날씨가 추워졌다. 어제 설악산은 이른 눈이 내렸다고 한다. 설악으로부터 시작된 색이 없는 무의 소리는 이제 곧 전국의 산과 들과 거리에 돌림노래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의 고요이며 다시 살아날 잠재이다. 겨울이 마냥 춥지 않다는 것을,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벌써 손끝이 시리지만 다가온 겨울이 이전보다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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