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몽상, 그리고 데카당스
습하다.
방안을 가득 매운 습기에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잠에서 깨고 싶은 생각은 없어 몸을 뒤척이지는 않는다. 두 눈만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은 미세하게 벌어진 블라인드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벌어진 틈인데 늘 다시 맞춰야지 하는 생각만 할 뿐, 실제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나는, 늘 귀찮음을 달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나를 찌르는 눈부신 노란빛의 햇살에 눈을 뜨고는 했는데, 오늘은 일상과 다르다. 대신, 텅 빈 것 같은 색깔의 내 방 안을 더욱 서늘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공허가,
하늘을 가득 매웠다.
어둡고, 습하고, 금방이라도 무엇인가를 내뱉을 것 같은 우중충함이다. 핸드폰의 시간을 본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 훨씬 이른 시간에, 나는 눈을 떴다.
조용하다.
온 세상이 습기를 머금어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늘어짐과 조용함이다. 고요, 내 방 안에 창백한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것은 침대에 누워 여전히 천장만 보고 있는 나를 계속해서 내리누르고 이 곳에서 벗어난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음악 재생 목록을 켠다. 재생 목록에는 천 개 가량의 곡들이 담겨 있지만, 듣는 곡은 실제로 다섯 곡도 채 되지 않는다. 나는 늘 듣는 것만 반복해서 듣는다. 이른 오전의 시간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중충하고 음울한 음악이 듣고 싶어 진다. 쏟아져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을 때 살갗에 옷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기분을 축축하게 만드는 종류의 음악, 내 몸에 한 꺼풀 덮어 씌워진 존재를 끊임없이 느끼게 만드는 음악.
나는 생각에 잠긴다.
방 안은 눈을 떴을 때보다 한층 더 습해져 있다. 비 냄새가 난다. 시원함과 비릿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환기시키지 않아 꽉 막힌 오래된 공기의 쾌쾌한 냄새는 비와 섞여 모든 것을 눅눅하게 만들고 있다.
어젯밤, 이야기 나누다 만 우울, 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 우울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울함이 전염되는 시간, 불빛마저 가라앉는 공간, 취향의 공감과 교감.
창 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분명 비가 내리고 있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블라인드도 여전히 틈을 벌린 상태고, 나도 여전히 이불속에서 숨만 쉬고 있는 상태다. 달라진 것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비 냄새가 더 짙어진 점이다.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사색의 시간, 오전의 우울함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좋다. 갑자기, 안과 밖의 조용함에 구분이 없어 두꺼운 유리창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이어지는 내용의 글을 나뉘어진 두 장의 종이에 적는 것처럼, 하나의 글이지만 분명 왼쪽의 글과 오른쪽의 글의 분위기와 감성이 미세하게 다른 것처럼, 비 내리는 밖과 내 방 안은 이런 차이를 가진 하나의 이어진 공간이다.
두 눈을 다시 떴다 감았다.
침대, 라는 공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다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집어넣는다.
생각이 둥둥, 떠다닌다. 천장은 먹구름,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 회백색의 빛, 넘쳐나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마음,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나의 귀찮음으로 뒤섞인다.
이렇게 나의 하루가, 나의 일상이, 또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