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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유 Aug 09. 2022

오늘도 나마스테

운동사심_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운동하는 사람들

 요가를 시작한 것은 허리 통증이 점점 심해져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효과가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요가를 선택했다. 그동안 금방 지루해 하고 싫증을 내기 때문에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몸의 이상을 느끼고 있어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는 있으나 사실 나를 믿지 못했다. 우연히 보게 된 헬스클럽에 요가 프로그램도 있어 함께 등록을 하고 수업을 받으러 갔다. 오랜만에 운동하는 거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나름 운동 해온 게 있어 잘 따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차분하고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던 동작들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선생님 따라 하기 바쁘고, 특히 ‘아도무카 스바나아사나’ 다른 말로, 견상자세는 엎드려뻗쳐 하는 것처럼 벌 받는 느낌이었다. 내 근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됐었나? 이 악물고 버티려고 애는 쓰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몸은 이래도 유연성 하나는 끝내준다고 생각했는데 유연성도 말이 안 되고, 한마디로 몸이 엉망진창이었다.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하기가 이렇게 힘든지 괜히 시작했나 싶었지만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 수업 하는 것이기에 이대로 포기하기는 너무 비참했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고 싶다는 나름의 자극이 되기도 했다. 다음 수업 때는 전보다 조금 더 버티고 지난 번 자세를 잊지 않고 따라 하다 보니 점점 자연스러운 동작이 되고 있었다. 요가의 매력은 계속해서 힘든 동작만 하는 게 아니라 쉬는 것도 운동과 일부분으로 몸을 계속해서 혹독하게 굴리는 것이 아닌, 쉼을 통해 다시 몸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다음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대충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선생님께서 설명과 함께 동작을 가르쳐주시는데 따라하는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걸 알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요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넓은 요가실에 나 홀로 매트를 깔고 앉아 있는데 얼떨결에 일대일 수업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역시 봐주는 회원이 나뿐이라 나는 요령을 필울 수도 없고, 쉴 수도 없이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하여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도치 않은 일대일 수업을 몇 번 하니 정말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기간이 나에게 있어 요가 실력은 물론 요가의 진정한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어려운 요가 동작도 포기하기는커녕 어떻게 해서든 성공해보려고 다시 일어서고 따라 하기를 반복하며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니 요가의 재미에 빠졌다. 집에서도 매트를 깔아놓고 선생님이 가르쳐 준 동작들을 해보았다. 요가 책들도 읽고 수업시간의 내용을 다시 복기하면서 몸과 마음의 수련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요가 할 때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나도 저렇게 하는 날이 올 거라 기대하며 요가의 신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걷고 있었다. 요가에서 가장 좋은 점은 명상이었다. 명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막상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이 때 당시 난 공황장애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고, 마음이 불안정했다. 요가의 마지막 시간인 사바아사나는 몸을 편안하게 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내면의 나에게 들어가 본다. 이 때 얼마나 나의 불안함이 컸는지 나의 명상 속에는 대지에 커다란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나를 보고 등에 올라타라며 부른다. 두려움을 가진 채로 난 그 사자의 등에 올라탔고, 사자는 여유롭게 초원을 거닐며 그 등 위에 있는 나는 바람을 느끼며 잠시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았다. 난 사자와 같은 강한 존재의 등 뒤에 숨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든든함을 믿고 두려움을 피하고 싶었나보다. 공황 증세가 나타나는 건 잠들기 직전이었다. 그럴 땐, 내가 했던 명상을 떠올려 사자를 불러온다. 사자 뒤로 숨어 나를 지킨다. 요가를 오랫동안 하는 사람들이 왜 요가의 빠지는지 이해가 된다. 이건 다른 운동과 달리 내면 깊숙한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온 집중을 하는 수련이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다른 운동은 어렵고 힘든 동작을 하면 괴로웠는데 요가는 어려운 동작을 할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 한계를 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렇게 난 요가인이 되어가고 있다. 전혀 할 수 없는 동작들이 선생님의 도움을 시작으로 점점 내 몸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고 몸이 아픈 곳도 낫기 시작했다. 가장 큰 도움은 마음의 안정과 아픔이 나도 모르는 새 치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두 명의 요가 선생님이 계신다. 나의 첫 요가 선생님은 요가 초보인 나에게 요가의 재미와 가장 중요한 허리통증을 줄여주시고 밝은 에너지를 주신 선생님이다. 첫 선생님이 떠나고 다음 선생님은 나의 그 기초를 탄탄하게 유지시키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켜주셨다. 두 번째 선생님도 한 번은 나 혼자 수업한 적이 있었는데 전혀 할 수 없었던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 누운 활 자세를 하게 해주셨다. 어릴 때 해보고 어른이 돼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특히 몸이 무거워 시도조차 두려운 이 자세를 몇 초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선생님의 응원과 할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동작이 있는데 ‘사람바시르사아사나’ 머리 서기라는 동작이다. 매일 자기 전 연습하다 보니 이제 90도는 설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이 동작을 완성하여 두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요가의 ‘요’자도 모르는 요가 초보가 어느덧 요가인으로 선생님과 마주할 수 있게 오늘도 요가책을 걷으며 동작을 따라 해본다. 


내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이 선생님들에게 깃든 신성에게 경배하며
오늘도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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