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 1, 술이 13, 술이 18
<이토록 공부가 즐거워지는 순간>이라는 책이 있다. 중고생에게 필독서로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뜨거운 공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지는 꽤 되었는데, 지금은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사실, <이토록 공부가 즐거워지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보면 절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는 중고생 때는 공부가 즐겁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런데 공자도 '공부가 즐겁다'는 말을 남기셨으니, 공부가 즐거워지는 순간이 정말로 있기는 있나 보다.
신신기하다. 이천여 년 전의 인간과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접점이 여기에서 발견된다. '공부'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인간사의 진리가 어느 구석엔 가에는 반드시 있다는 것이 아닐는지. 비록 내가 까막눈이라 그 진리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슬프기는 하지만, 인간사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신'이 있다는 확신을 얻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다.
내가 진작에 공부가 즐거워지는 비법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비법만 알았다면 의사, 판사, 교수 그 무엇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살았을 텐데 말이다. 어떤 공부를 하든지 간에 즐겁게만 공부할 수 있다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공자는 공부가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까?
자 왈
- 논어 학이 1 -
"얘들아! 공부가 즐거워지는 비법이 있어! 이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아주 비밀스러운 비법이야. 이것만 알면 세상 모든 것은 내 것이 될 수 있지!"
어느 날,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논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이렇게 운을 뗐다. 두 아이는 모두 눈을 반짝거리며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도대체 뭐예요? 그 비법이란 게?"
"빨리 말해주세요!"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도 나는 누가 들을 새라 목소리를 더 낮추어 속삭였다.
"<논어>라는 마법서에 보면 말이야. 공부가 즐거워질 수 있는 비법은 말이야!"
내 작아진 목소리에 아이들이 더욱더 내게 바짝 다가들자 나는 단호히 말했다.
"공부를 해야 한대."
"네?"
아이들은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나는 부연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가 즐거워지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 뭐라고요! 뭐라고요!"
"너무해요!"
내 말에 두 아이가 허탈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에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에게 속은 것에 분한 마음이 드는지, 두 아이들은 발을 구르며 항의했다.
그렇다. 사실 그 비법이라는 것이 별거 아니다. 공자가 말하는 '공부가 즐거워지는 비법'은 바로 이것이다. 공부가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곧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내가 <논어>의 첫 장, 첫 구절이었던 이 문장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 아마 수천번은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을 읽고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매우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이게 뭐야! 뻔한 말이잖아.'라고 하며 넘어갔던 구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한문 공부에 푹 빠져 잠잘 시간도 아깝고 밥 먹을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미친 듯이 몰두할 때, 그제야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더욱더 즐겁게 빠져든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공부가 재미없다고 느꼈던 것은 공부에 재미가 들릴만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서였다.
사실, 공자는 여기에서 우리가 평소에 착각하고 있는 사실을 하나 꼬집어 준다. 우리는 '배우는 것'을 곧 '내 지식'이라고 잘못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공자는 이 문장에서 '배움'과 본인 소유의 '지식'을 확실하게 구분 지어준다. '배운 것'은 '내 지식'이 아니다.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이나 친구, 혹은 책 속의 지식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심으로 착각한다. 책을 한 번 읽은 것으로 그 책의 내용이 전부 내 안에 들어와 있다고 여긴다. 교과서 속의 내용을 두세 번 수업 중에 들었을 뿐인데 내가 다 아는 내용이라고 자부한다. 그리고는 그 책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하게 되었을 때, 문제집을 풀거나 시험을 볼 때, 우리는 그제야 느낀다. 배운 것이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뇌를 거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고 있는 문장에 대해 좀 더 명료하게 분석해 보자.
공자가 이 문장에서 '즐거움'을 만드는 요소로 강조하고 있는 단어는 세 개다. '배움', '수시로', '연습'. 이 세 가지 단어는 공부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세 가지 비법이나 다름없다.
먼저, 우리는 배워야 한다. 배움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배운 내용을 '수시로', '틈이 날 때마다' 시간을 내어 실천해야 한다. 그 실천은 무엇이냐면 바로, '연습'이다. 수학문제는 직접 내 손으로 푸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인사하는 법은 스스로 인사를 해보며 익혀나가야 한다.
배움이라는 기회를 통해 '시간'을 투자하여 나 스스로 '연습'하였을 때 공부는 내 것이 되고, 바로 내 것이 되었다는 확신은 '즐거움'을 부른다. 이것은 곧 자신의 성장을 인지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자부심과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기쁨이다. 매우 건강한 즐거움인 것이다.
배움도 게을리해서는 안되며 시간을 내는 것을 게을리해서도 안되며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을 부지런히 해내는 '노력' 안에서 우리는 성장의 기쁨을 누린다.
오늘 하루, 열심히 배운 나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 연습한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자. 나는 지금 성장의 과정을 열심히 밟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매일이 쌓일 때 공부가 즐거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지금 공부가 즐거운 누군가는 <논어>의 말을 제대로 실현해가고 있는 것이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얼마 전, 나도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할 마음을 먹었다. 바로 주식 공부다. 나는 숫자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다. 심지어 수능 수학도 찍신이 강림하길 기원하다 결국 수능을 망쳤다. 그래서 내게 주식 공부를 시작한다는 결심은 매우 큰 일이었다.
이제 공부에 열중하는 공자의 모습을 표현한 문장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도 공자와 같은 즐거움으로 주식공부를 이어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입력하였다. 모두의 배움과 모두의 공부에 건승함이 깃들기를!
자, 재 제 문 소, 삼 월 부 지 육 미. 왈 "불 도 위 악 지 지 어 사 야."
- 논어 술이 13 -
- 논어 술이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