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만 맡고 사라진 사람들

by 지나

조용한 도서관.

나는 자리를 찾고 있었다.

어디 하나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찬 가운데,

책만 가지런히 놓여 있는 빈자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앉을 수는 없었다.

책 한 권, 노트 한 권이 이미 “이 자리는 내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분쯤 지나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 2시간이 지나서야

그 책 주인이 어슬렁 들어왔다.


너무나 당당하게.

그 자리는 여전히 자기 것이라는 듯이.


사실 자리 맡아놓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잠시 뭔가를 가지러 가는 정도의 시간이라면

서로 불편하지 않게 쓰기 위한 작은 장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잠깐”을 “내내”로 바꾸는 태도,

그리고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는 마음이다.


도서관뿐이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앉을 자리가 나자마자

어디선가 사람 하나가 튀어나와

“저기 제 친구 앉을 거예요” 하며

앞을 막는 경우를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몇 초 뒤에 나타났고,

나는 그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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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혼잡한 주차장에서

간신히 하나 난 자리를 사람이 가로막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손을 흔들며 말한다.

“차 올 거예요~”


그러면 그 공간은 차가 도착할 때까지

‘아직 오지도 않은 누군가의 자리’로 지정된다.


맛집에서 밥을 다 먹고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 없이

한참 동안 수다를 떠는 사람들.


밖에는 웨이팅이 20팀인데,

그 사실은 이미 그들의 ‘식사 영역’ 밖이다.


이런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건 하나다.


"나는 자리를 차지했고,

그 자리는 이제 내 것이다.”


문제는 이 태도에 시간 제한도 없고, 맥락도 없고, 배려도 없다는 점이다.


사람이 만든 공간에

‘자리’는 정해져 있지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권리는 고정된 게 아니다.


그건 순서와 배려, 그리고 ‘함께 사용함’이라는 개념 위에 있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안다.

모든 상황을 딱딱하게 따지자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여유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면,

그 자리를 조금 더 가볍게 여기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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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그렇게 ‘맡아놓은 자리’, ‘가로막은 자리’, ‘점유된 자리’를 보면서

내가 너무 깐깐한가, 예민한가,

스스로를 의심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배려란 결국 작은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 아닌가.

나만 편한 것보다,

다 같이 적당히 불편한 게 더 나은 세상이 아닌가.


나는 이해하려 했다.

사람마다 자리라는 개념이 다를 수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그 사람도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공공의 공간에서

공공이라는 개념 없이 자리를 소유하려 드는 모습 앞에서

나는 결국,

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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