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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Oct 22. 2023

보이지 않는 고객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라이브커머스 이야기 (10)

 "이거 한 번 입어보세요. XL사이즈 이거 하나 남았거든요."


옷걸이에 걸린 옷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저에게 매장 직원이 옷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깔끔한 디자인에 출근룩으로 무난한 컬러. 마침 찾고 있던 옷도 그런 스타일이고 사이즈도 알맞아서 쇼핑하기에 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직원의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때 제가 입고 있던 옷의 스타일과 나이대, 체형을 보고 추천해 주었겠지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매장 직원의 세일즈 능력을 말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매장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에 들어온 고객을 상대하는 입장이라면 아무래도 그 사람의 옷차림이나 성별, 체형 등을 보고 응대를 할 것입니다. 동행하는 사람은 있는지,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지도 살필 수 있습니다.

보석상에 들어온 젊은 커플과 중년 여성이 찾는 상품이 같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라이브커머스 방송에 들어오는 고객들은 ID만 보일뿐, 그 고객에 대한 다른 정보는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채팅으로 질문을 하는 이 고객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직장인인지 전업주부인지, 30대인지 50대인지 파악할 방법이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떤 컬러의 의상이 좋을지 고민이라는 채팅이 올라왔을 때, 그 고객이 눈앞에 있다면 나이대와 체형을 보고 어울리는 컬러를 추천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컬러의 대략적인 느낌만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고객들이 하는 질문들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만을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속시원히 얻지 못해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은 방송을 하는 PD와 호스트도 어찌할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호스트가 댓글을 보면서 답변을 하는 것 외에, 상품을 담당하는 MD, PD, 업체 담당자가 모두 실시간으로 채팅 응대에 달라붙곤 합니다.

신속한 응대가 가능한 데다가 같은 질문에도 다양한 답변이 달리면 그중 원하는 답변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온라인 고객 응대의 어려운 점은 또 있습니다.


라이브커머스 특성상 여러 개의 상품을 동시에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고객들의 요청사항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전복죽을 먹어보는 시연을 하고 있는데 호박죽을 먹어봐 달라는 요청이 올라옵니다.

잠시 후 호박죽을 보여주면 지금 막 시청을 시작한 고객이 다시 전복죽은 언제 보여주냐고 묻는 식입니다.


PD 입장에서 고객 요청사항은 최대한 들어줘야겠고, 그렇다고 미리 짜놓은 흐름을 다 무시하고 진행할 수도 없으므로 난감한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방금 전체 구성을 소개했는데도 잠시 후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묻는 고객이 또 등장하면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의 요청사항을 최대한 들어주는 이유는 고객과의 신뢰 확보를 위한 측면이 큽니다.


어려운 질문만 잔뜩 던지고 구매를 안 하는 고객들도 있겠지만, 그 고객들에게 지금 방송하는 상품 하나를 더 파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그런 의미에서 라이브커머스 PD와 호스트는 세일즈맨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상담 서비스 역할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이브커머스는 온라인의 특성상 적어도 고객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거나 본체만체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직접 마주하고 체형에 맞는 사이즈를 눈앞에 가져오지는 못하지만, 모두에게 차별 없이 성심성의껏 응대한다는 특징이 있기도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한 질문에 답변을 안 해주거나 하면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고객을 응대함으로써 얻게 되는 피로감도 없지는 않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은 감사 댓글이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혼자되신 친정아버지께 선물로 보냈어요. 아버지께서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이런 댓글을 볼 때면 생방송의 긴장감도 포근하게 느껴지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열심히 답변을 단 것이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를 한다면, 백 번 천 번이고 마음을 다해 응대하는 것이 라이브커머스 PD의 본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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