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있는 김밥집에 가면
비닐없이 은박지로 싸여진 김밥을 들고 올 때 홀가분하니 기분이 좋았다.
아니야. 비닐도 안 받았는데 이 정도는 별 것 아니야. 뭉치고 나면 이만한 크기밖에 안 되는 걸.
그런데 김밥을 일주일에 몇 번씩 먹다 보니까
이것 역시 안 나오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땅에 묻으면? 썩는데 얼마나 걸릴까?
만들 수 밖에 없는 쓰레기는 어쩔 수 없지만
이 은박지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쓰레기인가?
대답하자니 모호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고
하기에 따라서는 아니기도 하지.
그러던 어느 날
김밥을 평소보다 많이 사게 되었는데
이날 마음을 먹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김밥 한 줄을 사올 일이 생겼다.
오늘은 자주 가는 그집 말고 다른 가게로 간다.
설레기도 하고
사장님 반응이 어떨까 싶기도 하고
또 뭐 어때 싶기도 하네.
전에 이 가게에서 몇 번 포장해 봤는데
종이와 플라스틱이 혼합되어 있는 케이스를 쓴다.
김밥의 기름기 때문도 그렇지만
재질이 혼합이라서 분리수거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오늘 반찬통을 들고 갈 이유는 충분해.
예정대로 김밥집에 들렀다.
일반 김밥 한 줄 주세요.
아니요, 가져갈 거예요.
아 그리고 여기에 담아주실 수 있나요?
솜씨 좋게 담아 주셔서 김밥이 다 들어갔다.
묵직한 통을 기분 좋게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역시 해보니까 별것 아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여서 통을 내밀기가 더 쉬웠다.
가져간 통이 원형이고 생각보다 작아서
김밥을 한 알 한 알 넣으시는 걸 봤다.
다음엔 넣기 좋게 입구가 넓은 통을 가져가야겠어.
포장용 비닐봉투와 젓가락을 거절하던 때의
기쁨에 비할 게 아니다. 훨씬 좋다.
이제 김밥 포장은
어쩔 수 없는 쓰레기 (X)
안 만들 수 있는 쓰레기 (O)
이제 떡볶이나 순대 사러갈 때도
통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