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받지 않을 권리
온라인으로 미네랄을 주문했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주문할 때는 "팸플릿이나 셈플 필요 없습니다. 물건만 보내 주세요." 라고 적는다. 팸플릿은 받자 마자 폐지행이고, 목적 잃은 셈플은 오래도록 썩지 않는 플라스틱쓰레기를 만들 뿐이다.
쓰레기를 만들어냈다는 씁쓸함과 분리배출하는 번거로움이 내몫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는 요청사항을 적는 란이 없네. 블로거 후기들 보니까 휴대용케이스가 같이 오는 모양이던데. 어쩌지. 휴대용케이스 집에 있는데. 영양제를 주문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휴대용 케이스까지 받을 수는 없다!
별난 고객이라 여길까봐 싫긴 하지만, 요청한들 과연 내 것만 따로 빼줄 수 있을지 알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업체에 전화를 하자.
내가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 회사가 섬세하지 못한 거다. 고객인 나에게 케이스가 필요한지 아닌지 물어보지 않은 무심함!고객센터 시작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다.
내 주문건이 케이스와 같이 포장되기 전에 연락이 닿아야 하니깐.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 예상처럼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상담원 목소리에서 나 같은 고객이 흔치는 않음이 느껴졌다. 원하지 않으시면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경우가 드물어서 처리가 될 지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말투. 그게 내 느낌 뿐이길 바랐다.
전화를 끊은 뒤 뿌듯함을 한동안 곱씹었다.
온라인 주문을 하면서 직접 전화를 걸어서 물건 외에 다른 건 보내지 말라고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쓰레기를 안 만들었다는 좋은 기억이 잊혀질 때쯤...
어이가 없다...
통화내용은 녹음되었을 거고 상담원도 내 요청을 기록해뒀을텐데 왜? 2번이나 통화했잖아?!
내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 김빠지는 기분뒤에...
'이 땅에 사는 한 쓰레기를 안 만들고 사는 건 이렇게 시류를 거스르는 일인가? '
'내가 유별났던 건가?'
라는 생각들이 밀려왔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큼직한 택배 상자를 새로 매만지고 안에 휴대용케이스를 넣었다.
영문을 모를 수도 있으니까 포장하기 전에 메모도 넣었다. 테이프를 감았다.
너는 내일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줘야겠어.우체국을 가는 수고쯤이야. 어차피 갈 일도 있었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면 할 수 있었다.
"착불이요."
운송에 드는 기름, 인력 등이 생각났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휴대용케이스를 원치 않는 고객이 있다는 사례를 남기는 일이었다.
집에 휴대용케이스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없는 사람이 요청하면 그런 사람들만 주면 되는 거지.
영양제 만드시는 업체님들,
플라스틱 저렴하다고 막 나눠주는 거 아녜요. 몸에 좋은 성분만 담아 영양제 만드는 것은 좋은데
오염된 환경에서 살면 좋은 영양제가 무슨 소용이죠?
영양제 먹은 걸 아깝게 만들지 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