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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Feb 27. 2018

전략의 함정

신의 한 수는 없다

전략의 기초

전략은 군사용어다. 전략의 목적은 전쟁의 승리다. 승리를 위해 전투를 계획·조직·수행하는 큰 차원의 계획이 전략이다. 전략론의 저자 바실 헨리 리델 하트는 "전쟁의 목적은 살육이 아니다. 적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전략이 적의 저항 의지를 마비시킬 수 있다면, 살육은 필요 없다"라고 말한다. 전략적 승리는 피 흘리지 않는다.


전략은 비군사적 분야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경영분야에서 크게 발전했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경영사 교수였던 알프레드 챈들러는 경영전략을 "기업의 장기적 목적 및 목표의 결정, 이들 목표를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활동방향과 자원배분의 결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논문 보이는 손으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전략은 어디에나 있다. 거리의 전략가들.

현대적 의미의 전략이란, 승리를 목적으로 필요한 활동방향과 자원배분을 결정해서 경쟁자를 항복시키는 행동이다. 전략은 경쟁이 있어 존재한다.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전략의 경쟁요인을 새로운 진입 기업의 위협, 대체재의 위협, 구매자의 교섭력, 공급자의 교섭력, 기존 기업 간의 경쟁의 5가지로 정의한다.


기업은 5가지 경쟁요인을 통해 시장의 현황과 미래를 읽을 수 있고, 시장의 여러 신호를 판단해서 대응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 마이클 포터는 기업이 경쟁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본원적인 3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3가지 전략이란 원가 우위 전략, 차별화 전략, 집중화 전략이다. 그럼 전략은 어떤 순서로 설계될까?


전략의 응용
영어로는 전쟁의 예술로 번역되는 손자병법.

전쟁이란 속임수다! 손자병법(孫子兵法, The Art of War)은 고대 중국의 병법서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전략 지침서라 평가받는다. 조조는 "병법서 중에서 손자병법만이 가장 심오하다"라고 극찬했다. 손자병법 시계(始計) 편에는 전략 수립의 순서에 관한 좋은 지침이 나온다.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 그것이다.


전략의 시작은 도(道), 뜻을 세우는 일이다. 뜻은 의지고, 비전이다. 사업을 시작한다면, 왜 사업을 하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돈을 벌자가 아니라,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뜻을 세웠다면 전략을 펼칠 때를 결정해야 한다. 행동의 적절한 시기를 결정하는 일이 천(天)이다. 뜻이 좋아도 시기를 놓치면 패한다.



지(地)는 위치를 결정하는 단계다. 전쟁에서는 전장(戰場)이고, 경영에서는 시장이다. 아무리 좋은 뜻과 시기를 잡았어도, 내가 싸워 이길 수 없는 곳에서는 전쟁을 할 수 없다. 해군이 공중에서 싸울 수 없고, 한국어 강사가 미국에서 성공하기 힘든 이치와 같다. 내부적으로는 나의 현재 위치와 역량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뜻과 때와 위치까지 결정했다면, 나가서 싸울 장수를 선임해야 한다. 장(將)은 적임자를 뽑아 권한을 위임하는 단계다. 장의 본질은 적재적소와 권력분산이다. 전략의 마지막 단계는 법(法)이다. 법은 제도이자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체계적이어야 한다. 좋은 시스템은 때와 장소, 사람이 바뀌어도 문제없이 작동되는 유기체다.


전략적 대응
잘못은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전략을 잘 세워도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2008년의 일이다. 한 대기업 인사교육팀에서 큰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너무 좋은 기회라 초반 손해를 감수하고 정성을 다했다. 문제는 고객사 매니저의 태도였다. 예술가에게 무례한 요구를 하는 행동이 반복되었다. 우리 회사 직원이 이 문제를 정중하게 항의했다.


직원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고, 심지어 욕설까지 들었다고 했다. 화가 났다. 고객사 매니저 전화번호를 받았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에 생각했다. 침착하자, 전략이 필요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가짓수를 머리에 그렸다. 그리고 예상 가능한 반응을 모두 적은 후, 최선의 행동을 선택했다.


나 : 여보세요?
갑 : 네, 대표님 안녕하세요. (상당히 상냥했다)
나 : 네, 잘 지내셨죠? 직원에게 보고를 받았...
갑 : (말을 끊으며 대뜸) 그러게 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건방질 수가 있죠?
나 : (옳거니) 욕설을 들었다고 하던데요?
갑 : (머뭇거리며) 네, 그럴 수밖에 없었네요....
나 : 사과하실 거죠?
갑 : 뭐라고요?
      대표님 미치신 거 아니에요??!! (욕도 했다)
나 : 그럼 상무님과 통화하겠습니다. (딸깍)


내가 상무와 통화를 했을까? 하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본인 스스로의 입으로 갑질을 상사에게 보고하는 매니저의 행동이었다. 내가 전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니저는 (너무나 고맙게도) 상무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행동을 당당하게 보고했다. 결과는? 상무가 나에게 전화를 했고, 며칠 후 우리는 사과를 받았다.



물론 피해도 있었다. 고객사 매니저는 그날 이후 우리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하지 않았다. 본인이 가진 권력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한때, 이 갑질 사건을 술자리에서 자랑했던 시절이 있다. 이제는 하지 않는다. 결코 훌륭한 전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과를 받고 고객사 매니저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패했다.


전략의 함정
이세돌 vs 알파고 4국은 정말 신의 한 수였을까?

전략은 완벽할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승리란 없다. 전략의 함정은 신의 한 수를 믿는 순간 생겨난다. 2016년 이세돌 선수와 알파고의 대결을 복기해보자. 대결 4국에서 이세돌의 절묘한 수가 나온다. 알파고의 시스템은 당황했다. 결국 이세돌 선수가 승리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신의 한 수였을까?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


이후 구글은 알파고 제로를 출시했다. 셀프 바둑 시스템으로 바둑의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는 알파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알파고 제로는 강화 학습을 시작한 지 36시간 만에 이세돌을 상대했던 알파고의 실력을 넘었고, 40일 만에 커제를 꺾은 알파고 마스터의 실력도 넘어섰다. 이세돌이 다시 알파고 제로를 넘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전략이 필요 없는 순간이 더 많다.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잘못은 전략적으로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요즘 미투 운동이 뜨겁다. 가해자들에게 신의 한 수는 없다. 세상에 잘못을 지울 수 있는 전략은 없다. 무릎 꿇고, 사과하고, 충분한 죗값을 받는 길이 최선이다.


영원한 승리는 없다. 따라서 영원한 전략도 없다. 신의 한 수가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영원한 전략은 될 수 없다. 전략의 함정은 지속가능성을 맹신하는 행동이다. 치밀한 전략이란, 최악의 수를 두고도 최선을 쫓는 치열함이다. 이기는 전략이란 신의 한 수를 잊고, 인간의 불완전함을 완성하기 위해 계속 걷는 것이다. 끝.


완벽한 것은 하늘의 길이고,
완벽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


故其疾如風 其徐如林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侵掠如火 不動如山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고,
지킬 땐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難知如陰, 動如雷霆
숨을 땐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듯이 하되,
일단 군사를 움직이면 벼락 치듯 신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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