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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7 – 사랑이 먼저 움직였다

죄를 말하지 않고, 사랑을 보여준 한 사람의 이야기

by 나그네 한

사람은 때때로 어떤 장면 하나에 오래 머물게 된다. 눈에 보인 것보다 마음에 남은 것이 더 클 때, 나는 그 이야기를 쉽게 놓지 못한다. 그날 나는 한 가지 이야기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사람의 눈물에 대해, 눈물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의 눈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에 대해.


예수가 어느 마을의 바리새인 집에 초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자연스레 유대인의 전통적인 접대 장면을 떠올렸다. 낮은 식탁을 중심으로 반쯤 누운 자세로 둘러앉은 사람들, 입구에 놓인 물 항아리와 손 씻는 대야, 먼지 묻은 발을 씻을 종의 손길. 집 안에는 올리브기름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손님을 위해 빵과 무화과, 포도주가 차려져 있었을 것이다. 집주인은 손님을 맞으며 뺨에 입맞춤을 하고,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렸을지도 모른다. 바리새인이었다면 이 모든 절차에 더욱 철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은 이런 형식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낯설고 어지러웠다. 거기엔 한 여인이 있었다. 손에 옥합을 들고 조용히 다가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바로 그 여인이.


“그 여인, 당신도 아시겠지만요. 음, 그냥... 사람들이 알아요. 그 여자가 누군지. 그러니까, 뭐랄까. 이름도 안 불러요. 그냥 그런 여자예요.”


그 말을 꺼낸 이는 마치 입안에 무거운 돌을 물고 있는 것처럼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렇게 말했다. 한 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끝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름 자체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누구’가 아니라 ‘무엇’으로 불리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그녀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길모퉁이를 돌 때면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고, 아이들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며 손목을 붙잡았다. 대놓고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침묵이 오히려 더 날카롭게 그녀를 찔렀다. ‘죄 많은 여자’라는 말. ‘행실이 좋지 않다’는 말. 그것만으로도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의 틀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그녀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아무도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다. 매일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 혼자 사는 여자라는 이유, 낯선 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의 침묵. 사람들은 그것들을 연결 지어 하나의 그림을 그려냈고, 그 그림 안에서 그녀는 ‘음란한 여자’로 굳어졌다. 부정한 관계, 불결한 몸, 손대지 말아야 할 존재. 그녀는 죄를 지었다기보다, 죄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녀는 누군가의 누이일 수도, 친구일 수도, 딸일 수도 있게 되니까. 사람들은 그 가능성마저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죄는 그녀를 덮었고, 사람들의 시선은 그 죄 위에 덧칠을 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규정한 존재였다.


그날 그녀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섰다. 아무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는 점이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동네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런 여인이 경건한 이들의 식사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문 앞에서 그녀를 붙잡았어야 했다. 아니면 그녀 스스로, 그 문턱에서 발을 돌렸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무도 막지 않았고, 그녀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들은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반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걸음은 망설임이 없었고, 그 조용한 단호함은 주저하는 틈을 주지 않았다. 혹은 그녀가 들어설 때, 그곳에 있던 이들이 그녀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릴 용기를 내지 못했거나, 혹은 그 여인의 돌발적인 행동이 불길하고 불편해서 애써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그날 그녀는 들어왔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손에는 값비싼 향유를 들고서. 죄를 덮은 시선을 뚫고,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거기서 울었어요. 그냥... 조용히, 계속. 아무 말도 없이 예수 발 앞에 무릎 꿇고요.”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의 목소리는 중간중간 끊겼다. 본 사람이었는지, 들은 이야기였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가 떠올리는 장면은 마치 오래전 본 기억처럼 생생했다. 사람들은 그날 그녀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를 기억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고, 고개를 숙이자 그 눈물이 예수의 발에 떨어졌다고 했다. 처음엔 작은 울음이었지만, 곧 참을 수 없는 흐느낌이 되어 방 안을 적셨다고.


그리고 그녀는 머리카락을 풀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사람들 앞에서 여인이 머리를 푼다는 건, 그 시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곧장 예수의 발에 머리카락을 댔다. 천도 아니고, 손도 아니었다. 부끄러움이 아니라, 절박함이었다.


“그건... 이상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행동, 아무도 안 해요. 그런데 그녀는 망설이지도 않았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날 그 자리를 상상해 보았다. 바리새인의 집, 식탁을 중심으로 모여 앉은 이들. 무겁게 깔린 침묵. 그 한가운데서,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자신의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누군가의 발을 닦고 있는 모습. 너무도 낯설고 당혹스러워서, 아무도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이 상황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은 말없이 지켜봤다. 불편함 속에, 동시에 뭔가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본능 같은 시선으로.








그중 한 사람이,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율법에 밝고 조심스러운 인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건하다는 평판을 들었고, 그날도 형식에 맞춰 예수를 초대했다. 식사 자리도 마련했고, 사람들도 불렀으며, 예의도 갖추었다. 하지만 그의 환대는 어딘가 겉돌았다. 말과 행동은 다름이 없었지만, 마음은 어딘가 굳게 닫혀 있었다. 그가 예수를 진심으로 초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관심과 의심이 뒤섞인 복잡한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예수라는 사람이 정말 선지자라면, 저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고도 가만있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것은 그 바리새인의 속마음이었다.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은 이미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관찰하고 있었고, 여인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 여인과 예수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겐 불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수가 정말 ‘하늘과 연결된 사람’이라면, 죄인을 알아보고 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에게 경건함이란, 죄인을 구별하는 능력과 그들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을 누가 처음 알아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속마음을 들었고, 나는 그 속삭임을 따라 바리새인 시몬이라는 인물을 조심스레 되짚었다. 겉모습은 말끔했고,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의 내면에는 차가운 판단이 있었다. 그는 예수가 여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예수라면, 그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하며, 그렇다면 오히려 그녀를 밀어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때 예수가 입을 열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시몬을 향해, 그를 초대한 그 바리새인을 향해 말했다. 말끝이 약간 올라갔다. 확신보다는 조심스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예수를 시험하듯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듯 보였다.


“시몬, 네게 할 말이 있다.”


그 말은 꾸짖음이 아니었다. 강요도 없었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묻고, 기다리는 어조였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판하거나 반박하려는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낯익은 어조로,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일상의 장면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 비유였다.


“어떤 돈을 꾸어준 이가 있었지. 두 사람이 그에게 빚을 졌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 다른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숫자의 차이를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오백 데나리온은 장정이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벌던 당시의 임금을 기준으로 하면 거의 1년 반에 가까운 품삯이었다. 오십 데나리온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오백에 비하면 감당의 무게가 다르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 돈을 빌려준 이는 결국 두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예수는 그제야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바리새인 시몬은 질문의 의도를 곧 눈치챘지만,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경제적 상황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겠지요.”


말끝이 약간 올라갔다. 확신보다는 조심스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예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옳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시몬의 입에서 나온 그 단순한 대답이, 이제 곧 방 안의 공기를 바꿔놓을 시작점이 될 것처럼. 예수는 비유를 끝내자마자, 시선을 돌려 조용히 여인을 바라보았다.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시선 하나가 이 장면의 중심을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여인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예수가 시몬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의 시선이 여인에게 닿아 있었다. 마치 그녀가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길 바란 것처럼.


그 장면을 떠올리던 이가 내게 말했다.


“그때요, 예수님이 시몬에게 말하면서도 계속 그 여자를 보고 있었어요. 그 여자가 들으라고, 그녀가 알아듣길 바란 것처럼... 그냥 그런 느낌이었어요.”


예수는 시몬의 환대를 조용히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비교했다. 시몬이 하지 않은 것과, 여인이 했던 것. 물도 주지 않았던 시몬과는 달리, 여인은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었다. 입맞춤도, 향유도, 모두 그녀가 먼저 했고, 진심으로 했다. 그 행동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녀만의 고백이었다.


예수는 말했다.


“이 여자는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랑했다.”


사람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 여인의 행동이 사랑으로 해석되었고, 그 사랑은 이미 받은 용서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이미 마음 깊이 받아들인 용서와 자비가, 그날 그녀를 그 자리에까지 이끌어낸 것이었다.


예수는 마지막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죄는 용서받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흠칫 놀랐다. 죄를 용서한다고? 그것도, 누구도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 여인에게? 그 말이 던져지던 순간, 그들의 얼굴엔 놀라움과 혼란이 엇갈려 비쳤다. 곁눈질하던 몇몇은 몸을 조금씩 뒤로 물었고,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며 눈길을 피했다.


한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말은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는 오래된 회한이 스며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 여인의 자리에 있었어야 했다는 양, 마음속 무언가가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 눈빛엔 두려움과 의심이 함께 섞여 있었다. 죄는 사람을 구별 짓는 기준이었고, 죄인을 분리해 내는 것이 경건함의 일부라고 믿어왔던 이들에게, 그 말은 경계를 허무는 선언처럼 들렸다. 익숙한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고, 익명으로 쌓아 올린 자부심이 처음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누군가는 속으로 말없이 되뇌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틀린 건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오래 가려왔던 건 아닐까?’


그 순간, 방 안에는 이상한 정적이 흘렀다.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은 단단한 벽처럼 무언가를 막고 있었다. 예수의 말 한마디가 그 벽에 금을 내고 있었다. 죄와 용서, 자격과 사랑, 경건과 부끄러움… 그동안 분명하다고 믿어온 경계들이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 중 몇은 그날 이후에도 여전히 판단하고, 여전히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 방 안에서 뭔가가 바뀌었고, 그 말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후, 오래도록 말없이 머물렀다. 여인의 이름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바리새인의 집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도, 그날 식사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도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방 안에서 일어난 일, 그 분위기, 그 침묵, 그리고 그 말의 무게는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가슴에 남았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따라가 보았다. 한 사람의 눈빛, 또 다른 이의 움찔하는 몸짓, 누군가의 침묵.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가 바라본 방향과 그 말투. 그는 분명 죄를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사랑을 말했다. 정죄보다 먼저 들려온 것은 이해였고, 판단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품음이었다.


그 여인은 많은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 그 누구보다 먼저 사랑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이미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으로, 몸으로, 눈물로, 머리카락으로, 향유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그걸 ‘이상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진실하다’는 말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누구는 묻는다. 예수가 누구이기에 죄를 용서하느냐고. 나는 그 물음 앞에 오래 머물렀다. 그 물음은 단지 그의 정체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 세상에 가져온 방식이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사람을 죄로만 보지 않았고, 누구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어떤 ‘존재’였다고, 조심스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는 묻는다. 누가 더 사랑했는가. 누가 더 용서받았는가.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나는 지금까지 누굴 판단해 왔고, 어디에 선을 그으며 살아왔는가. 어쩌면 그 여인은, 그 경계 밖에서 먼저 용서를 경험한 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용서가 그녀로 하여금, 누구보다 먼저 사랑하게 만든 건 아닐까.

이 이야기를 남기며 나는 기억하고 싶다. 용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사라질 때 시작되며, 사랑은 그 빚이 사라졌음을 아는 자의 반응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눈물 앞에 멈춰 선 그 순간, 사람들은 처음으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따라, 오늘도 조용히 글을 남긴다.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7:36–50"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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