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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pr 24. 2024

그림자가 드리울 때…

두 번째 사진과 글 한 덩이

어린 시절 놀이터는 골목길이었다. 어두침침한 골목길 보도블록에는 드문드문 이끼가 끼어있었으며, 언제부터 고여있었는지 모를 물을 장난감 삼아 뛰어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누가 샀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공 하나, 돌멩이 몇 개, 흙 몇 줌을 가지고 신나게 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난감은 연탄재였다. 연탄재가 수북이 쌓여있으면, 그걸 발로 차 보기도 하고, 굴려 보기도 하고, 새총을 쏴서 맞춰보기도 하는 등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이 놀이터였고, 장난감이었다. 아니, 골목길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골목길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화 정비로 혹은 재건축으로 깨끗해진 도로와 정형화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논다. 장난감도 유행을 타는 듯, 어쩔 땐 눈오리를 만드는 집게가 유행을 타고, 어쩔 땐 캐치볼이, 어쩔 땐 스피너가 유행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가장 좋은 장난감은 스마트폰이다. 유튜브도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으니 만능 장비였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요즘의 깨끗한 거리의 모습이 아니다. 아직은 소외되고, 개발되지 않은 좁은 골목길의 모습을 써 보고자 한다. 어느 한 편에는 높은 고층빌딩이 햇빛을 쬐기 위해 더욱더 높이 올라가고 있지만, 어느 한 편에는 고층빌딩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여전히 습하고, 이끼가 낀 보도블록을 유치한 상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그러한 공간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서울의 어느 한옥촌은 최신 아파트보다 더 높은 시세를 형성한다고 한다.(분명 재개발의 호재 때문일 수 있지만, 꼭 골목길이 나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첨언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골목길의 풍경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서는 차이는 없지만, 큰 건물 때문인지 더욱더 어둡게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았던 그런 깨끗하고 정형화된 아파트 단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재각기 각자의 모습을 하며 형성할 뿐이다. 특히, 아파트처럼 장기수선충당금을 모아 어느 시점에 외관을 보수하는 그런 작업이 없다 보니, 마치 땜질을 하며 채워나가는 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 골목길에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보조 이동수단이다. 전동 휠체어라고 했던가? 어르신들이 걷기 힘들어 이동을 보조해 주는 수단으로써 지급이 되는 장비인데, 그곳은 여전히 자동차가 아니라 전동 휠체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편한 공간이라 하더라도, 모두를 포용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젊은 사람들은 점점 떠나가고 나이 든 어르신들의 공간이 되어가는 골목길. 그 골목길이 누군가는 추억의 공간이라 하겠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삶의 공간이고, 생활의 공간으로 남아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곳이 있다는 것만 알 고 있을 뿐, 쉽게 지나가려 하지 않는다.


Leica MP, Voitglander Nokton Classic 35/1.4 MC, Fuji Superia 400
Leica MP, Voitglander Nokton Classic 35/1.4 MC, Fuji Superia 400
Leica MP, Voitglander Nokton Classic 35/1.4 MC, Fuji Superia 400
Leica MP, Voitglander Nokton Classic 35/1.4 MC, Fuji Superia 400
Hasselblad 503CXi, Carl Zeiss Planar 80/2.8, Kentmere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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