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 반쯤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분 소개로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했어 그곳에서 나의 첫 번째 사수를 만났는데 그는 30대 초반이었어. 나이 차도 나지 않아 사석에선 형이라고 부르라고 매번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 둘 다 술에 취해 만취 상태가 되어야 장난처럼 형 '형아!'라고 부르면 그런 내 머릴 힘차게 쓰다듬으면 크게 웃어주었지
대리였던 그와 친밀한 관계가 된 건 입사 초기에 계약서 초안을 거래처에 보내며 자그마치 “0” 하나를 빼놓고 보낸 걸 알아차린 거였어. 계약서는 이미 넘어갔고 나는 점심도 먹지 못할 만큼 벌벌 떨었었지, 친구들은 날 보고 아는 사람 중 가장 눈 작고 겁 많은 사람이라고 나를 불렀거든.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대리님께 이실직고하자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자리로 가서 일을 하라고 얘기해 주었었지. 그리곤 따뜻한 물 한 잔만 가져다 달라고 얘기하길래 물을 잘 조절해서 가져다 드렸더니 이 물 마시라고 얼굴이 창백해졌다고 물 마시거든 회사 한 바퀴 돌고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구. 그리곤 돌아온 나에게 해결됐으니 그런 실수 다신 하지 말라고 주의하라고 하였지.
물론 나는 그 이후에도 몇 번의 대형 사고를 치곤 했어. 그때마다 잠잠하다 했다 이때쯤 한번 사고를 치겠구나 조마조마했는데 속이 다 후련하네라고 하며 싫은 소리 한번 안 하다가 어쩌다 정말 어쩌다 잘한 일이 있으면 큰소리로 정말 일을 잘하는 놈이다 네가 있어 우리 회사가 이만큼 컸다고 하며 비행기를 태워 대기권까지 날려 보내 주곤 하셨지.
대리님도 퇴사하고 나는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커서 직장을 관둬버렸어 대책도 없이 말야.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렇듯 점점 서로 연락이 뜸해지며 멀어져 갔는데 얼마 전 대리님 소식을 들은 거야.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공황장애가 너무 심해서 이명 때문에 잠도 못 잘 정도였다고 나는 대리님 성격에 모든 실수를 떠안고 돌아앉아 일어설 힘도 없던 마음 씀씀이로 내가 편하게 사고를 치며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착한 사람 보면 줄타기하는 사람을 아래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해
앞으로 다신 볼 수 없다고 해도 마음속으로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어.
힘들 때 떠올리면 가슴에 따스한 피가 돌며 온몸으로 힘이 나고 혈색이 돌던 그런 따스한 물 한 잔 같은 사람.
폐활량이 부족해서 수면 밖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 숨을 몰아쉬며 집중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겨울이면 그 따스한 물 한잔을 떠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