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스물한 살이었던 날이었죠. 형이 운전면허증을 따고 중고차를 산 뒤 한동안 차를 몰고 다니고 싶어 안달이 났을 때였죠. 눈만 뜨면 집 앞으로 찾아와 나를 태우고 그냥 길을 달렸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지도책을 펼치고 보조석에 앉아 지도책에 집중하느라 풍경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인천 월미도에도 가고 가평 쪽으로 달려가며 운전을 하였고 출발할 때마다 우리 죽어도 같이 죽는 거라며 저를 싣고 다녔습니다.
운전면허를 따고 차까지 생겼으니 얼마나 신이 났는지 평생 그렇게 신나 하는 가난한 그림쟁이 곁에서 기름값만 딸랑 들고 차를 타고 싸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맘에 드는 곳에 차를 정차시키고 스케치북을 꺼내 눈덩이 하나를 물통에 담고 수채화를 그렸습니다. 1월의 추운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차 안이 따뜻해지면 히터를 끄고 달렸습니다. 뒷좌석엔 둘이 그렸던 풍경화들이 쌓여갔었어요.
그날은 직장에 다니던 같은 화실 누나까지 꼬드겨서 북한강으로 셋이서 차를 몰고 갔습니다. 누나가 박격포 포탄 같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과 탕비실의 컵라면 3개, 커피믹스 5개를 훔쳐 왔다고 태어나 처음으로 성공한 도둑질에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남자 둘은 여왕벌을 맞이하듯 날개를 힘차게 내저으며 환호하였습니다.
북한강은 평일인 탓에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강기슭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컵라면 뚜껑을 덮습니다. 3분 동안만 단단히 언 강으로 살며시 걸어 들어갔죠. 쌓여있는 눈을 걷어내자 두꺼운 얼음 아래로 바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깊고 검은 강 위로 두꺼운 유리창 같은 강물 위를 걷다가 지나가는 송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지금생각하면 송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발로 얼음 위를 지쳐가며 따라갔습니다. 점점 더 강의 한가운데로 하염없이 눈을 발로 지치며 송어를 따라갔습니다.
강의 한가운데로 나아갔을 즈음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고개를 돌리자.
송어는 사라지고 강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만났습니다.
이렇게나 멀리 와 버렸구나. 자 지금부터 내 손을 잡아
천천히 발로 지쳐 바닥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느리게 발길을 옮기며 걸었어요.
건너편 나무에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로 물놀이 사망이 잦은 구역이라는 플래카드가 반쯤 찢어진 채 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리는 게 보이자 속으로 그랬죠.
물놀이하는 게 아냐~아냐
분간할 수 없는 바닥을 보며 걷다가 확연히 검게 아래가 보이는 곳에선 자세를 낮춰 걸어야 했죠.
누나는 계속 더 크게 내 이름을 부르고 이름 좀 그만 부르라고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그 얼음 아래 검은 밤.
얼음 아래 차가운 풍경들.
1월의 추위는 그 얼어붙은 강 위에서 바라다본 강바닥 같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은 아직 단단히 얼어붙은 곳이 아니야
바라볼 때와 발을 내디딜 때는 서로 다른 곳을....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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