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세탁기에 있던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보슬비가 내립니다. 옷으로 스며듭니다 살갗이 빗물에 타들어 갑니다.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풍경 아래 가만히 멈춰서 있습니다.
신발과 바짓단이 젖어듭니다. 그 비가 멈추는 걸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흠뻑 적셔야 멈출 거란걸 알고 있습니다. 이 아침 우산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비의 속도는 사람의 속력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느리고 빗소리도 나지 않는 빗속을 뛰어다니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다들 내리는 비를 묵묵히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이 정도 젖어있는 상태라도 빗방울이 속도를 내도 딱히 뛰거나 건물 안으로 찾아들어가는 것보다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며 걸을 것입니다.
빗줄기로 주문을 걸었습니다. 그런 밤이었습니다.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현관에 잠시 서서 생각합니다.
벌거숭이 두더지쥐에 관한 얘기를 들은 건 꽤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벌거벗은 임금님이었습니다. 불쾌하지 않은 이름의 동물은 사하라사막 동 아프리카에 살고 있습니다.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류지만 유일하게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건 땀샘이나 피하지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위 추위에 약해 땅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지만, 입가에 고양이처럼 돋아난 털이 더듬이 역할을 합니다.
마치 개미처럼 번식을 맡은 여왕 한 마리와 일과 싸움을 맡은 나머지 개체들, 새끼까지 수십에서 백여 마리가 땅속에 긴 굴을 파서 군집 생활을 합니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30년 이상의 수명을 가지고 있어 같은 몸집의 쥐보다 5~10배 이상 오래 삽니다. 인간으로 따졌을 때 800세 수준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죽을 때까지 늙지 않고,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암을 비롯한 다른 병에도 강한 것으로 확인돼 인간 수명 연장 연장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땅속으로 들어가 식물처럼 몸 안의 과당을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식물처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아침엔 마지막으로 뽀송뽀송한 신발을 꺼내봅니다. 신발 안으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립니다.
거센 빗줄기도 환영할만합니다.
만두가게에서 커다란 양은 뚜껑을 들어 올리자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는 수증기처럼 아침이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핸드폰으로 어제 내린 비로 결빙이 우려된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길이 미끄러운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유를 알면 더 미끄럽습니다.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적게오는 비.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