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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점자처럼.

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by 적적


그 집은 오래된 한의원 약재들의 이름이 적힌 약재서랍장 같아.

모든 서랍은 너무 오래 길들여져 열리기를 준비하고 있지.


그 집은 서랍을 여는 소리만 들렸어


그 집 남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고요하기만 했었지.

어디가 아픈 건지, 어떤 증상이 있는 건지


그 집 여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조용히 서랍을 열기만 했지.

진맥의 이유가 무엇인지, 쓰인 메모대로


그 집에 볼 수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건

가슴 아픈 축복이었을 거야.


어떤 소리는 만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니까.


환갑이 넘어 점자책을 받은 그 집 사내는 그 집 여자와 손끝으로 울었다고 했지


가끔 편지지엔 돋아난 글씨들이 만져지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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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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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