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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Nov 05. 2019

대전에서 운명같은 사랑을 만나다.

나의 아내를 찾다.



2014년 10월.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대전에서 부산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기장군까지 들어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출장 업무를 마치고 기차 좌석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걸쳐 두니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여자 친구다. 복도로 나갔다.


"어. 일 났어?"
"아니. 하는 중이야."
"난 끝나서 이제 복귀 중이야. 벌써 밤이네."

순간 맴도는 침묵. 연결복도가 덜컹덜컹 댄다.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찬 공기가 뺨을 때린다.

"나 할 말 있어."

다시 퍼지는 침묵.

"뭔데? 지금 말하면 되지."
"아니.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어."

만나서 얘기하는 건 하나뿐. 죽느냐 사느냐.

"헤어지자는 얘기하려는 거야?"
"만나서 얘기하자."
"그 얘기 맞잖아."
"시간이 필요해."
"얼마나?"
"만나서 얘기해."
"만나면 뭐가 달라져? 결정하고 나한테 통보하는 거잖아."
"그럼 만나지 말고 여기서 끝낼까?"

세 번째 침묵.

"그래. 언제 볼까?"
"일요일에 보자."
"알았어."

다음날 저녁, 나는 대전 롯데백화점에 가서 코트 한 벌을 샀다. 이건 내 오랜 관행이었다. 아주 오래전 한 여자 친구의 헤어짐 통보 자리에서도 난 옷을 사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쇼핑을 하고 내 옷을 샀다. 그 친구는 내게 물었다. 왜 지금 옷을 사냐고.


"옷을 입고 싶어서. 그냥. 그 이야기를 들으니 옷이 사고 싶어 졌어. 별다른 이유는 없어."

종로 인사동 앞 커피빈. 결전의 시간. 나는 10분 늦게 갔다. 커피를 시켰다. 여자 친구는 한 달 정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자 친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매몰차게 한 마디 건넸다.


"그래. 넌 한 번 결정하면 이미 끝난 거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적어도 나는 아주 좋은 환경으로 들어왔어. 너는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결혼을 생각하고 너를 만났어. 그런데 내가 대전으로 가고 나서 넌 딱 한번 내려왔어. 딱 한번. 다른 누가 생겼다느니 그런 건 물어봐야 의미도 없겠지. 우리가 5년을 만났던 50년을 만났던... 영화처럼 너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 나는 선택을 했고, 니 선택만 남았어. 결정되면 얘기해줘. 나 먼저 나갈게."

만약 내가 거기서 울고 불고 매달렸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난 같은 결과였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친구는 한번 결심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도 거기서 이미 끝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각지 못한 상대의 대응에 조금이나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대차게 먼저 문을 열고 나왔던 것이다.

역시. 결과는 같았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찌질해졌다. 받지 않는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울었다. 통곡했다. 밤은 새까만 암흑이었고,블랙홀이었다. 우주의 강력한 자성에 빨려 들어가 휘휘 바닥으로 치닫다가 천장에 부딪혀서는 마지못해 정신을 차리고 빵 한 조각 베어 물고 애써 정복 차림으로 회사 의자에 앉아 서류더미를 움켜쥐었다.


늘 퇴근 시간은 기본 밤 10시를 넘겼다. 주말도 없이 일만 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은 제어되지 않았다. 어둑어둑 가로등 불에 의지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안주와 함께 소주 두 병을 샀다. 깨끗하게 샤워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하얀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는 딱 한 곡. 그것만 매일 반복해서 들었다.


칼 뵘이 지휘하는 모차르트 진혼곡 레퀴엠.


진혼곡으로 그들과 같이 애도했다. 죽은 나의 과거. 그렇게 두 달을 침잠했다. 소주 탑을 세웠다.

애초부터 그녀는 대전으로 내려오길 거부했다.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너의 전공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내가 자리를 잡았으니 하물며 취미로라도 할 수 있다.' 이야기하면 혹 하다가도 항상 끝은 가벼운 웃음으로 마무리했던 그녀였다. 위험하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두 달 후. 나는 다시 나로 돌아왔다. 내 살림에 사치스러운 시계 하나를 맞췄다. 내 시간을 가진 시계로. 쏟아지는 소개팅비를 맞았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다. 일상의 무료함을 잠시 달래는 시간과도 같이 스케쥴에 관행적으로 붙어 버렸다. 그렇게 2015년의 봄을 보내던 중, 느닷없는 술자리에서 평생의 삶을 발견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거긴 왜 가?”  


신행지가 포르투갈이라고 했을 때, 열의 아홉은 같은 질문을 했다. “거기 뭐가 있는데?”, “차라리 스페인을 가.”, “거기 딱 하나 가는거야?”, 심지어는 “거기가 유럽인가?”까지 물어봐서 이참에 아예 모범답안을 작성해둘까도 생각했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은 신행지로서는 사실상 불모지였다. 최근에서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포르투갈의 도시 곳곳이 소개되고, 직항로가 열리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폭증한 것인데,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우리의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왜냐하면 우린 누구나 가고 누구나 경험할 법한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보편적인 것들에 대해 조금의 거리를 두는 습성이 두 사람에게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걸 왜 우리가 되풀이해야 하지?’

      

우리는 같은 회사 동료였다. 나는 8층, 아내는 9층에서 근무했다. 처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우와 직장에 이런 걸출한 미인이 있구나' 속으로 탄성을 지르면서도 차마 말은 건네지 못했다. 까만 긴 머리, 하얀 얼굴에 또렷한 눈, 오똑한 콧매, 다부진 입술, 나와 어깨를 견줄만한 키를 가진 그녀는 농담 한 마디 찔러도 눈썹 하나 깜짝 안 할 것 같은 뭔가 냉랭한 기운이 온몸에 흐르고 있었다. 그저 목례만 가볍게 끄덕. 그리고는 각자 층에서 조용히 내렸다.


아내와 제대로 말을 섞어본 건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한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여차여차하다 보니 내 앞에 아내가 앉았다. 생각보다 대화량이 많았다. 그렇게 영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내가 꽤 ‘일반적이지 않은’, 그리고 좋은 작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하나의 특징을 포착했다. 나의 눈이 쏠렸다.


식상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주제로 오르자 서로 할 말이 많아졌다. 주연, 조연의 캐릭터에서부터 시나리오의 전개, 나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등등 여러 가지 내용들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답이 나왔다.


나눌 이야기가 참 많구나.


아내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맥주든, 소주든 가릴 것 없이 기분 좋게 사람들과 마시고, 어울렸다. 분위기를 이끌 줄 알았고, 상대방도 잘 배려했다. 경청했다. 나는 한 잔 따라놓고 깨작깨작 세네 시간을 보내는, 아니 그건 버티는 거지 그래, 그런 사람은 멀리했다. 왜냐면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하니까.


와. 술도 잘 마시는구나.   


나는 외모를 본다. 그것도 매우 까탈스럽게 본다. 그래서 주변에서 항상 욕먹었다. ‘넌 쥐뿔 뭐가 있는데?’. 나는 잘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생기지도 않았다. 그냥 길 가다 마주쳐도 "뭐 누구?" 하는 정도의 외모다. 그럼에도 나는 뻔뻔하다. 왜냐고? 그건 내 기준이니까.

 

“나는 외모는 신경 안 써요. 사람을 보지.”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외모 더 본다. '사진이랑 다르잖아.', '그냥 밥만 먹고 하늘만 보다 왔다.', '이빨 사이가 벌어졌잖아.', '그 사람 옷 원래 그렇게 못 입어요?' 하여튼 소개팅 해주면 비평, 불만 엄청 많다. 그러게 누가 안보고 나가래? 그래서 난 소개팅 전 항상 사전 프로필에 대해 묻고 여부를 결정한다. 나가서 실망하고 중재자 욕하느니 서로 인상착의 확인해서 할지말지 결정하면 시간낭비, 감정낭비 할 필요 없고 백번 낫다. 하물며 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서약하는 판국에 외모를 안 본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결론은 뭐냐면 아내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귄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때, 아내 쪽에 가족행사가 있었다. 할머님의 생신잔치였는데, 마침 장태산 휴양림에서 온 식구가 모인다고 했다. 당시 아내는 차가 없었다. '그래 그럼 내가 휴양림 숙소까지 바래다주고 혹시라도 부모님을 뵙게 되면 인사만 잠깐 드리지 뭐' 하고 부르릉 시동을 걸었다. 하하 그런데 이게 웬 걸, 내 시나리오는 완전히 빗나갔다. 즉석에서 그 자리에 초대받았다. 공교롭게도 아내를 둘러싼 모든 가족 친지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 본 아내의 사촌 여동생은 '형부 형부'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사방에서 '강서방'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집. 우리 집 닮았다.


양가가 모두 종가였다. 모두들 많은 혈족들과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는 원만하고, 쾌활하고, 마음의 공간이 넓은 그런 가족원을 내심 원했다. 서로가 서로의 적격자였다. 우리는 운명 같은 만남에 빠져들었고, 사귄지 2주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말만 들어도 황홀하다. 그러나 그 불꽃같은 사랑을 온전히, 차분히 나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항이다. 그래서 결혼은 첫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것들에 함께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운명의 또 다른 말은 목숨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극한 상황에 닥쳐서도 내 목숨을 기꺼이 상대를 위해 내어 줄 수 있다고 스스로가 몇 번이고 자문하고 확신할 때 나는 그것을 '운명 같은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다 믿는다.


신행지는 이야기가 나온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우리는 유명한 이곳저곳 볼 것도 없이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떠올리며 "거기 좋겠다! 가자!" 하고는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혹독한 겨울을 거쳐, 나는 그렇게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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