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치는 창문 사이로 기지개를 켜던 순간, 목이 이상하게 칼칼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그저 평소처럼 말했고, 다음주에 있을 PT 발표 연습에 열중했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목소리가 가랏가랏 갈라져 나오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 ... 아 ... !
목소리가 다 갈라지며 기분 나쁜 쉰 목소리가 공기 중에 퍼졌다. 평소 같으면 따뜻한 차 한 잔이나 꿀물 한 컵이면 싹 나아지리라 믿었지만, 이번에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낯설 만큼 묵직하게 눌려 있는 목 주변의 이상함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내 몸이 갑자기 왜 이러지?'
결국 수업을 포기하고 병원을 찾기로 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미국 병원의 불편함이 바로 내 앞에 펼쳐졌다. 혼란스러운 마음과 불안함이 뒤섞여 속이 타들어 갔다. 특히 외국인에게 가혹한 의료 보험 제도라니, 누가 들어도 싸늘해질 이야기이건만, 막상 내게 닥치니 ‘설마 그래도 이렇게까지는 아니겠지’라고 희망 반 불안 반이었다.
겨우겨우 접수 창구를 통과하고, 대기실 한 구석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푸른빛이 감도는 병원 조명 아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언어로 작은 신음소리를 내거나, 기침을 내뱉거나, 핸드폰만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오늘따라 그 특유의 병원 향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의사와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일단 목 좀 볼게요. 아~ 해보세요." 라는 한 마디에 기계적으로 입을 벌렸다. 기구가 목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 차가운 불쾌함에 몸이 절로 움찔댔다. 의사는 몇 번 확인을 반복하더니 이내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감기가 아닌 것 같네요.
큰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라는 말만 툭 던졌다. 불과 5분 남짓한 진료. 그럼에도 그 짧은 시간의 대가로 부과된 비용이 15만 원에 달했다. 형식적인 질문 몇 마디와 목을 들여다본 것뿐인데, 진료비 청구서는 숫자만큼이나 냉정하고 무거웠다. 유학생에게 15만원은 1주일 동안의 식대비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이게 다야? 그래서 내 목 상태는 도대체 뭔데? 왜 갑자기 말을 못하는건데?' 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잠긴 데다, 해외 의료 시스템의 낯섦까지 겹쳐 의사에게 묻고 따질 기력조차 없었다는 게 더 억울했다.
결국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분노가 섞인 한숨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는 여전히 갈라져 나와 감히 불만도 제대로 표출하기 어렵다. '돌팔이 의사' 라며 속으로 욕을 내뱉고, 억울함과 서글픔이 뒤엉켜 달아오른 뺨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도로 사이로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답답함을 풀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큰 병원이라면, 그래도 좀 더 체계적으로 검사해줄까?' 하는 마지막 기대감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목의 묵직함과 마음의 헛헛함을 함께 달랠 길이 없어, 부엌에서 따뜻한 물을 한 잔 더 끓여 마셨다.
시계 바늘이 느릿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했다. 뜨거운 물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호오— 하고 김을 불어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어쩌면 이도 잠시 겪어야 하는 타지 생활의 일부분일 뿐일지도 모른다. 아플 때만큼 사소한 빈틈이 크게 다가오는 경우도 드물 테니 말이다.
그래도 아프면 서럽다. 타지에서 아프면 더 서럽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끝에 결국 결론은 정해졌다. '큰 병원에 가볼 수밖에 없겠네' 거기서라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조금 번거로울지라도, 또다시 대기실을 전전해야 할지라도, 확실히 이유를 알아야만 어쩐지 삶의 안정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전화기를 들고 불친절하게 응대하는 미국 간호사와 실랑이를 하며 겨우겨우 큰 병원 예약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