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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08. 2021

아빠는 홈트레이닝을 시작했단다

동백꽃 필 무렵(3)

“3대500”을 찍은게 딱 서른살 때였다. 28살에 헬스를 시작해, 처음 6개월 정도는 기초를 익히고 정교사가 되어 처음 담임업무를 맡았기도 했고, 학교에 집중하기 위해 6개월은 쉬다가 다시 제대로 집 근처 헬스장을 딱 좋은 곳으로 정해서 그곳에서 죽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 결과였다. 우리 동네 헬스장은 문을 닫게 되는 3년 후까지 동네 중장년층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화려하지 않고 갖출것은 다 갖춘 전통과 격식을 갖춘 곳이었다.


 군대가 체력단력에 큰 도움을 주었다. 청초한 문학소년이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팔다리에 근육이라곤 조금도 붙어있지 않아서 팔굽혀펴기를 단 열번도 하지 못했고, 그런 즈질체력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대로였는데 그만 학생운동에 조금 발을 들였다가 기무사 관리대상이 되어서는 양구GOP부대에 끌려간 것이다. 해발 1180m에 위치한 초소에서 매일 왕복 13키로 길을, P-999k와 실탄이 장전된 총까지 20kg 가까이 등짐을 매고 다녔으니. 제대한지 3년 뒤에 헬스장에 등록을 했을 때부터 스쿼트 100kg이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다져진 체력으로 30대의 고된 고강도 학교업무를 버텨냈다. 근육은 탄수화물이나 지방보다 좋은 에너지원이다.


 그리고 지금은 물론 완전히 저질체력에 근접하고 있었다. 체력이 정점에 달한 서른살에 바깥양반과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여느 남자처럼 우선순위는 뒤집어졌다. 한두해 뒤에 학교업무가 운동의 우선순위에, 그러고 나자 대학원이라는 우선순위가 얹혀졌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웨이트트레이닝이라는 종목에서 성취동기가 실현되고 자존감이 향상하자 이전만큼 열의를 갖고 대하지 못했다. 업무로 너덜너덜해지는 일주일을 보내고 금요일에 집에 와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헬스장을 한창 다니던 때는 1년 넘게 한번 켜지도 않던 물건을.


 그런 한때의 헬스 덕후에게 아이가 생겼으니. 이제 헬스장은 영영 포기해야겠다싶다. 원래는 대학원 공부만 끝나면 마음껏 쇠질을 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가득했는데 말이다. 당근마켓으로 아령과 로잉머신을 사왔다. 한달 가까이 미뤄두고 있는데, 코로나 전까지 다니던 헬스장에서 이제 운동화도 꺼내와야 한다.집에서 책을 보며, 밥을 하며, 설거지를 하며 시시때때로 운동을 하고 있다. 개강하고 3월달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두루두루 잘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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