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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뛰퇴남의 달리기 인문학

8. 바람을 가르며 밖으로

by wangane

2025년 10월 26일, 가을 정취 만끽하기 좋은 날


무더운 여름,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나는 달린다.

폭우만 아니라면 계절은 나의 변명이 되지 않는다.

퇴근길 탄천을 달리다 보면 뜻밖의 손님들을 만나게 된다.


겨울철 단골손님, 고라니

겨울엔 먹을 것이 귀한지 고라니가 자주 나타난다.

눈이 마주치면 잠시 둘 다 멈춘다.

“너도 참 고생이다.”

그 한마디가 절로 나온다.


얼마 전에는 먹이를 찾던 너구리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사라져 사진도 못 찍었다.

대신 인터넷에서 본 귀여운 너구리 사진을 마음속에 붙여두었다.


주말에는 성내천을 달린다.

물고기 사냥꾼 왜가리와

청둥오리와 잉어들이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지키며 유유히 헤엄친다.


이런 손님들을 만나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헬스장 러닝머신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생동감이 야외에는 있다.

빛나는 햇살, 피부를 간지럽히는 바람, 풀잎의 떨림을 느끼며 달리기.

그것이 ‘살아있는 달리기’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뛰는 그 러닝머신이
사실 감옥의 노동기구였다는 걸 아는가?


1818년, 영국의 엔지니어 윌리엄 큐빗(Sir William Cubitt) 죄수들의 게으름을 막고 감옥 운영을 돕기 위해 ‘트레드휠(treadwheel)’ 을 발명했다.
그것이 오늘날의 트레드밀(treadmill)이다.

즉,

우리가 헬스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그 기구는

처음엔 ‘운동기구’가 아니라 ‘고문기구’였다.


트레드밀에서 내려와야 한다.

풍경이 바뀌지 않는 달리기는 정신적 피로감만 남긴다.

계절의 변화도,
날씨의 냄새도,
뜻밖의 손님도
거기선 만날 수 없다.


바야흐로 러닝 인구 천만 시대다.

2030 세대가 러닝크루를 구성하여 대 유행 중이란다.

함께 달리고, 함께 사진 찍고, 함께 SNS에 인증한다.

그것도 좋다. 하지만 달리기는 원래 단체운동이 아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야외에서 달리려면 결국 혼자 달리게 된다.


의사이자 마라토너인 조지 쉬언(George Sheehan)

달리기 철학의 경전인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말했다.

“달리기는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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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이야기하며 달릴 땐
육체적이고 정신적으론 즐겁겠지만,
영적인 경험을 하긴 어렵다.

달리기는 고독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 안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밖으로 나가자.
고라니와 왜가리, 청둥오리가 있는 세상으로.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달라지고,
내 마음이 변하는 길 위로.

트레드밀 위의 감옥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의 풍경 속으로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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