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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는 맛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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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Apr 23. 2021

어리석은 시금치, 지혜로운 라면

아버지도 미완의 존재였음을

엄마는 미국으로 떠났다. 먹성 좋은 우리 남매를 더 먹성 좋은 아빠에게 맡겨두고. 그래선지 자꾸만 뒤가 돌아봐졌다고 한다. 보름 뒤에나 돌아올 엄마를 배웅하며 아빠와 오빠와 나, 우리 셋은 제각기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다. 집에 오면 손도 까딱 안 하는 아빠, 물 한잔도 남의 손을 빌어 마시는 아빠가 보름 동안 우리의 끼니를 챙겨줄 수 있을까. 걱정이다. 사실은 아빠야말로 말도 못하게 심란했을 것이다.


엄마가 떠난 첫 주, 아빠는 퇴근길에 왕새우를 사왔다. 마치 당신이 잡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몹시도 뿌듯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살면서 그렇게 큰 새우는 다시 보지 못했으니까. 어찌나 씨알이 굵은지 생선그릴에 한참이나 들어갔다 나와서도 다시 바다로 돌아갈 듯 싱싱한 새우를 보며 우리 남매는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아빠는 다혈질이다. 그쯤되면 집어던질만도 한데 몇번이고 넣었다 뺐다 하며 기어이 먹을 수 있는 왕새우구이를 만들어냈다. 예상밖 아빠의 선전이었다.


엄마가 만들어두고 간 밑반찬에 가끔 곁들여지는 아빠의 서툰 요리들로 우리는 큰 어려움없이 2주를 보냈다. 엄마가 돌아오기까지 사흘이 채 남지 않은 저녁, 그제야 나물반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아빠는 시금치를 사오라며 오빠를 농협에 보냈다. 6학년짜리 머스마가 손수 골라 저울에 달아온 시금치는 어쩐지 볼품이 없어보였고 시금치 상태가 영 못마땅했던 아빠는 오빠를 다시 내보냈다. 이번에는 꼭 좋은 놈으로 골라오라는 당부와 함께.


아빠로부터 퇴짜맞은 시금치를 들고 오빠는 한참이나 계산대 앞을 서성거렸을 게다. 고작 열 세 살짜리에게 시금치를 바꿔오라는 미션은 얼마나 가혹한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아빠는 다혈질이다. 쏟아지는 아빠의 화를 피하기 위해 오빠는 종종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곤 했다. 그날도 오빠는 용케 시금치를 바꿔왔다.


다시 시금치 봉지를 열어본 아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아빠의 꾸중에 오빠는 군말없이 두번째 시금치 봉지를 들고 다시 문밖을 나섰다. 세번째 시금치는 또 얼마나 신중하게 골랐을 것인지.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인 시금치들 사이에서 오빠는 몹시도 고민해가며 봉지를 채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앞선 두 번의 심부름보다 오빠의 세 번째 귀가는 많이 늦어졌고, 아빠의 허기는 갈수록 심해졌다. 한참만에 돌아온 오빠가 내민 시금치 봉지를 열어본 아빠는 그대로 그 봉지를 오빠에게 던졌다. 고된 세 번의 심부름을 마친 오빠는 자신에게 쏟아진 시금치를 묵묵히 주워 봉지에 담았다.


사흘 뒤 미국에서 돌아온 엄마는 문제의 시금치를 꺼내보고 이게 얼마나 달고 맛있는 시금치인데, 공연히 아들에게 지청구를 주었느냐며 아빠를 나무랐다. 오빠에 대한 안쓰러움과 아빠에 대한 타박을 한데 무쳐낸 그날의 시금치나물은 엄마 말마따나 달고 맛이 좋았지만 도무지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입이 쓴 탓이었다.




다혈질 아빠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못 받고 자라서 중 2가 된 오빠는, 어느날 갑자기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소득도 없이 학교에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 이유였다. 엄마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오빠는 완강했다.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준다는 중 2의 무서움을 알았던 것일까. 아버지는 웬일로 화를 내지 않고 오빠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학생이 아니니 내일부터 일을 해서 밥값을 하라"는 아버지의 지당한 말씀에 오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새벽 세 시에 출근하는 아버지를 따라 오빠도 집을 나섰다. 아버지의 커다란 추레라(trailer) 안에서 부자는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추측컨대 침묵만이 그 큰 차 안을 꽉 채웠을 것이다.


운송회사에 도착한 두 사람은 배차를 기다리며 라면을 끓였다. 라면은 오랜 세월 아버지의 고정아침메뉴였다. 아무리 보온도시락에 따뜻한 국을 싸주어도 막 끓인 라면국물만큼 속을 데워주는 게 또 없다고 했다. 새벽추위에 떨던 뱃속으로 뜨끈하게 내려가는 라면국물을 느끼며 오빠는 잠시나마 "할 만한데?"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날의 처음이자 마지막 호사인 줄도 모르고.


30년 넘게 운수업에 종사한 아버지는 말이 사장이지, 소속 없는 하청업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잔뼈가 굵고 투사 기질이 있는 아버지를 원청업체 직원들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짐도 가려받았다. 손이 많이 가는 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길이가 제각각이라 아무도 받지 않으려 하는 철근을 자청해서 싣기로 했다. 평소같으면 절대 받지 않았을 짐이었다.


다른 추레라들이 모두 회사를 빠져나가도록 아버지와 오빠는 길이가 다른 철근을 묶느라 애를 먹었다. 겨우 철근을 붙들어 싣고 시동을 걸었을 때,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에 오빠는 절망했다. 그날 새벽 세 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하루는 저녁 여섯 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꼬박 15시간을 일하고 들어온 오빠는 다음날 조용히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아버지는 현명했다. 엇나가려는 아들 앞에서 학생의 본분을 상기시키고, 학생 신분을 내려놓았을 때 치러야 할 응분의 대가를 요구했으며, 실제로 당신의 일터에 데려가 현실이 녹록치않음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사춘기 자녀를 감싸안는 도량, 고된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기지, 자녀의 성향을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혜안까지. 영화에 나올 법한 지혜로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불과 2년 전 아들에게 시금치를 내던지던 사내와는 딴판이었다.




녹황색채소의 대표격인 시금치와 인스턴트의 대표주자 라면. 같은 음식이라도 그 성분과 효능이 양극을 달리듯, 아버지의 어리석음과 지혜로움도 한 사람 안에서 나온 것이라기엔 극명히 달랐다. 아버지의 현명하고 어리석고 따뜻하고 무자비한 면모를 모두 흡수하며, 몸에 좋은 시금치도 입에 좋은 라면도 골고루 먹으며 자란 우리 남매는 오늘, 그럭저럭 괜찮은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도 사실은 한낱 40대 초반의 덜 자란 어른에 불과했다는 사실, 어른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완성형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미완의 어른이 되어서야 받아들다. 그러니 오늘 아버지의 허물을 굳이 들춰내어 글로 박제하는 이 딸의 구척스러움*을 아버지도 부디 용서하시길.



*구척스럽다 : 오래되어 거의 잊고 있던 사건이나 사물을 새삼스럽게 꺼낸다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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