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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은 충분조건, 팬은 필수조건

장사는 팬을 만들어야 한다.

by 타짜의 클리닉 Dec 30. 2024

편은 충분조건팬은 필수조건과 같다.     

굴은 겨울에 별미다. 그냥 초장에 먹어도 맛있지만, 김치에 넣어 무쳐 먹으면 굴보쌈을 먹는 맛이 난다. 밀가루를 입히면 굴전이 되고, 국에 넣으면 굴국이 된다. 굴에 어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생굴만 있으면 없던 요리로 뚝딱 변신을 한다.     



그제 덕유산을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향적봉까지 걸었다. 옷만 챙기고 등산화를 챙기지 못한 탓에 아이젠을 대여해 운동화에 감싸니 짠짠했다. 케이블카 정상에서 향적봉까지는 겨우 120m의 거리다. 그래도 산 길에 눈 길이라고 10분을 넘게 걸으니 땀이 났다. 하여간 금세 덕유산의 봉우리 하나를 오르고 보니 세상이 참 조그마했다. 5분의 풍경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니 2시다. 밥을 먹으려면 근처여야 했다. 하지만, 검색한 금산의 굴국밥집은 브레이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막상 금산에 도착하니 가게입구엔 삼각형 안내판이 문을 막고 있었다. 안 읽어도 딱이다. 그곳에도 브레이크타임이 있었다. 이미 시간은 3시라 배가 고팠다. 다시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하니 4시다. 오는 길에 보니 유성 오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아내가 굴전을 먹고 싶어했기에 오일장에서 제일 큰 전집을 갔다. 하지만, 겨울이라고 굴전을 파는 집은 없었다. 모둠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작은 전집에는 혹시나 팔까 해서 2차로 옮겼는데 거기도 팔지 않았다. 다시 동태전과 홍어무침을 시키고 또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게 굴전 때문에 4시부터 막걸리를 4통을 비웠다.    


굴국밥과 굴떡국에 굴은 넉넉했다.굴국밥과 굴떡국에 굴은 넉넉했다.


  

어제는 늘 그렇듯 아내와 단 둘이서 

스크린골프를 치고 그제 못 먹은 굴국밥을 파는 식당으로 향했다. 반석동에 있었다. 금산의 상호와 같았는데 서로 체인점 같지는 않았다. 하긴 그게 뭐 중요하랴. 1시반이 넘은 시간이었는데 손님이 많은 것에 놀랬다. 테이블이 대충 20개쯤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아내는 굴국밥을 나는 굴떡국을 시켰다. 그릇에 담긴 굴이 많은 걸 보고서야 왜 손님이 많은 지 이해가 갔다. 금산에서는 9천원이었는데 반석동은 만원이었다. 천원의 차이면 굴 서너개는 더 넣어도 손해가 없을 것이다. 굴 8~9알과 서너개 더 들어간 굴 12~3알은 큰 차이다. 천원이 그래서 요긴한 것이다. 손님에게 달라면 된다. 가격에 쫄지 말고 더 받아내고 그 돈으로 생색을 내면 손님은 단골을 자처한다. 스스로 포로가 되기를 선택하는 그 마법을 주인들이 신봉하기를 바란다.      



굴무침이 아니라, 야채무침에 굴이 들어간 18,000원은 아쉬웠다.굴무침이 아니라, 야채무침에 굴이 들어간 18,000원은 아쉬웠다.



반대로 굴무침(18,000원)은 아쉬웠다. 

우리가 예상한 재료들과의 무침이 아니라서다. 반대로 옆 테이블에서 시킨 굴부침개(15,000원)는 푸짐해보였다. 아내는 굴전 못잖게 굴부침개가 땡긴다고 말을 했지만 이미 우리가 시킨 음식 값은 38,000원이었다. 국밥의 가성비에 못 따라간 굴무침이 내심 참 아쉬웠다. 시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어야 하거늘..      



결론은 수시합격 포기,였다.결론은 수시합격 포기,였다.


저녁에 낭보?가 도착했다. 

둘째의 수시합격이었다. 대기 번호가 꽤 늦었지만 모두 합격을 취소한 탓에 아들에게까지 순서가 온 모양이다. 아들은 애매한 얼굴로 어쩔줄 몰라 했다. 가자니 학교 네임이 신나지 않고, 안가자니 일터로 쫒겨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 핑계로 아내와 한잔을 하려고 보쌈을 주문했다. 당연히 굴도 추가였다. 그 덕에 보쌈이 한층 더 푸짐해졌다. 굴을 팔지 않는 식당도 겨울엔 얼마든지 팔아도 좋다. 당연히 부메뉴(곁들임)로써다. 반드시 소마진만 붙이고 팔아야 한다. 그래야 손님들은 여지없이 가성비에 흡족해 한다. 동태탕집이라고 생굴을 못팔 거 없고, 부대찌개집도 채소로 버무린 굴무침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늘 먹던 음식에 손님 돈으로 곁들여 먹으라고 메뉴를 한시적 등판하는 것은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게의 주인들은 그런 묘수를 굳이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귀찮다는 것이 이유다. 몇푼 남기지 말라는 조언에 그거 팔아서 큰 재미도 없는데, 라고 응수할 뿐이다. 참 바보다. 손님의 마음을 자꾸 흔들어야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아쉽다. 자꾸 내 쪽으로 오게끔 흔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내 팬이 되어준다. 편과 팬은 큰 차이다. 편은 압도적인 힘이 되진 않는다. 팬은 그러나 압도적으로 추앙하고 따른다. 나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를 교주라고 할 정도로 광팬이 많았었다.     



사족을 붙여 본다. 

점심에 반석에서 먹은 굴집 건너편에 한우집이 보였다. 1~2층을 사용하던 식당이었는데 임대문의가 붙은 걸 봤다. 결국 손을 털고 만세를 부른 모양이다. 소 장사를 크게 하셨다고 들었다. 연간 거래량이 백억대가 넘었다고 했다. 자신이 워낙에 큰손이라서 수십억쯤은 쉬이 돌리고 하셨다고 했다. 자신이 컨설팅 한 정육식당 매출이 억대는 우습다고도 했다. 그러다 대형 유통거래처와 분쟁이 생겼고 그래서 부랴부랴 정육식당을 차리게 되었다고 했다. 유통이 막히고 돈줄이 막혀서 궁여지책으로 식당을 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했다. 컨설팅을 할 때와 직접 주방을 통제하고 메뉴를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 다름에 2년이 되었어도 월매출이 3천이 안된다고 했다. 도저히 버틸 힘이 없다고 했고, 무릎을 꿇어서라도 살려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게 올해 2월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12월, 어제 나는 쓸쓸히 퇴장했을 그 식당을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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