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靑坡
푸른 언덕이 있는 청파동을 다녀왔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그 동네가 정감이 들었고 소설 속 배경인 편의점에도 가 보고 싶어서였다.
하늘은 따사롭고 반짝였으며 티 없이 맑았다.
백범 김구 기념관과 효창공원을 거쳐 숙명여대 앞에 다다랐다. 서울에도 아직 안 가본 곳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여대 앞에서 남자 확성기 소리가 들려 자세히 보니 대학 청소, 경비 등 직원들의 시위 현장이었다. 열심히 일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수십 년 만에 처음 여대 앞을 지나갔다. 대학 졸업 후 처음인 것 같았다. 아마 1년 동안 볼 여자를 오늘 하루 다 본 느낌이었다. 요즘 여대생들이 이렇구나! 젊은 학생들의 패션, 헤어스타일, 차림새가 어떤지, 딸이 없어서 새삼스러웠다. 젊은 기운이 활기차게 느껴졌다
비 온 뒤 맑게 갠 날이라 마침 유럽 어느 나라에 여행 온 착각이 들었다. 하늘과 구름은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편의점이 궁금하여 찾아봤다. 청파동에서 유일하게 야외 테이블이 있는 곳을 찾았다. 원래 '숙대사랑점'에도 야외 테이블이 있었는데 민원으로 철거했고 지금은 '숙대드림점' 만이 남아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봉지 커피와 크림빵 등을 사고 결제 요청하면서 얼음컵을 달라고 하니까 점원이 "그건 직접 가져오셔야 한다."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 사이 결제가 이루어졌고 얼음컵을 가져오니 "그건 다시 결제를 해야 한다"라고 또 무뚝뚝한 점원의 말이 이어졌다. 다시 카드를 꺼내 500원을 결제했다. 다른 편의점에서는 얼음컵은 점원이 직접 꺼내주던 기억이 나서 점원에게 물어보았던 것인데 그 점원의 입장에서는 내 행동이 이해하기 어려웠나 보다. 그 순간 "아~ 여기 불편한 편의점 맞다!", "소설 속 독고랑 비슷하네" 하며 속으로 웃었다.
편의점이라고 다 편할 수는 없는 것이다. 24시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에 이 정도의 불편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청파동의 명물인 개미슈퍼와 만리서재를 찾았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채 사진만 남기고 왔다.
3시간 50분, 5.68킬로 걸었다고 트랭글이 알려 주었다. 이 어플을 사용하면 이 길을 따라갈 수도 있고 역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 필요하신 분들에게는 공유할 수도 있다.
저녁 식사 후 '서울로 7017'을 걸었다. 2017년 서울역 부근의 고가도로를 폐쇄하고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만든 곳이다. 이 길도 처음 걸었다. 서울역 차량기지는 철거되어 빈 땅만 남아 있었다. 그 뒤로 남아 있는 오랜 된 작은 빌딩들과 그 너머에 있는 새로 지은 고층 빌딩이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는 듯했다. 차량기지 터 반대편으로 구 서울역 건물과 대우그룹 빌딩이 마주 보고 있는데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들의 역사를 보는 듯 아련했다.
뉴욕 하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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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보니 깜짝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의점 직원보다 더 무뚝뚝한 큰 아이가 사 온 빨간 카네이션이 있었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오는 작은 아이는 보랏빛 화분을 들고 왔다. 고맙다고 하니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돈 한 푼 안 버는 아들들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한 여름눈 녹듯 사라졌다.
서울에는 아직도 안 가본 곳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