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약한 무의식이 제 운명이 되기 전에 고쳐야겠습니다
나는 말이 느린 편이고 행동 역시 굼뜨다. 그런 내가 무언갈 잘 해내기 까진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몸을 쓰는 것에 있어선 더욱 그랬다. 아빠와 엄마는 학창 시절 단거리 달리기 선수를 했었다 하고, 오빠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우리 집 운동 이단아를 담당하며, 많고 많은 같은 반 친구들 사이로 던져진 공을 유난히 자주 맞는 체육시간 럭키걸이었다.
그러다 복싱을 가게 되었을 땐 복싱장에서 가장 느린 회원이자, 오래 다녀도 체력이 늘지 않는 유일한 회원이었다. 최초의 더블 크라운을 달성했다. 복싱은 빠른 운동인데 그 박자를 따라가지 못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때마다 코치님은 얼굴이 새빨개진 나를 보며, "니 내일 안 오는 거 아니제?" 하고 앞날을 정확히 내다보셨다. 열과 성을 다하면 쉬는 날이 꼭 필요해 일주일 중에 겨우 이틀, 운이 좋은 주엔 사흘을 나갔다. 그래도 체력이 꽤 좋아져 잠시 후에 도착한다는 버스를 타보려고 달려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운동을 쉬었는지 이젠 정말 사회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안면 근육만 남았다 싶은 때가 왔고, 그때가 되자 근근이 살아내는 걸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조금 더 건강하고 싶은 마음, 조금의 마음, 그것이 찌든 내 모든 걸 바꿨다. 조금의 마음으로 물들기 시작해서 그런가 결정도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더 건강해져보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저 멀리 가두어버린 내 진심이 창졸간 떠올랐다. 그 문제에 다시 다가서기까지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할 것임을, 그리고 시간이 꽤 걸릴 거란 것을 직감했다. 괜찮은 척 너무 오래 살아온 덕에 잊어버린 내 진심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게 어색했다. 자라면서는 괜찮은 척하는 내가 괜찮지 않은 나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게 되었다. 힘든 게 뭔지 말하라고 할 때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나에게 의식 없이 무뎌져있었다.
하혈의 원인을 알 수 없어 산부인과를 매일 같이 다닐 때가 있었다. 병원 단골이 된 어린 나에게 애정을 쏟아 주시던 의사 선생님께선 딸 같다며 연신 내 걱정을 늘어놓으셨다. 그때마다 나는 정말로 괜찮다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일 같이 피를 보는 사람이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어요? 괜찮다 해도 무의식은 그게 아닐 거예요."
선생님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던 걸로 보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하혈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괜찮지 않은 내 무의식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지만, 증상부터 없애자 싶어 수술 후 약을 먹었는데 그때 그뿐이었다. 다소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며 나는 그저 괜찮다고 생각했다. 해볼 수 있는 건 해보았다 생각하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믿게 되는 순간도 금세 찾아왔다.
헬스장을 등록한 그날도 6년간 크게 변함없던 내 몸 상태처럼 하혈을 했다. 다른 게 있었다면 선명한 피를 본 것이다. 내내 보던 것과는 아주 조금 다른 양상이었다. 고작 그 정도의 차이였지만, 괜찮다는 말로 억눌러놓았던 작위적인 의식을 비집고 실은 괜찮지 않다고 불안에 떨고 있던 거대한 무의식이 드러났다. 아찔했다. 나의 불안을, 그리고 내가 이젠 괜찮은 척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친절한 나의 오빠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라며 짐짓 강경한 태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이끌고 헬스장으로 갔다.
볼링공 같은 근육을 입고 옷은 대충 얇디얇은 나시를 입은 사람(나는 나시 보이라고 존칭 하곤 한다)들이 가득한 헬스장, 단련된 근육 0%의 말랑순살인 내가 그들의 성지에 발을 들였다. 헬스 경력자인 오빠 덕에 운동기구 몇 가지를 써보며 나는 의외의 것도 알게 되었다. 혹시나 내가 운동뚱, 근수저였지만 모르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상상은 즐거웠지만 예외 없이 나는 진실로 병약한 말랑순살이었다.
현실을 마주하니 천근 같은 5kg의 추를 달고 운동을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운동을 하며 다음번에 올 땐 5개만 더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매번 의지를 다지며 헬스장으로 가 차분히 다져지고 있다.
달라지고 싶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던지,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처럼 집 앞 헬스장이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해 주었다. 먼저는 생각인데, 헬스장 밖에서 헬창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자신을 도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끈기와 의지가 대단해 보여서 같은 공간에 있으면 조금 더 힘을 내보게 된다. 다음은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공들여 보살핀 내 몸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게 싫은 것이다. 그 덕에 한동안 자의로는 멈추기가 힘들었던 자해도 조금은 덜하게 되었다. 조금만 변해보잔 생각에 많은 것이 바뀌어 간다.
의지는 다지는 것이다. 토지조사를 다닐 때에도 들어설 수 없을 것만 같던 골목길 입구에서 한참을 배회하다 결국 들어갔다 나오면, 실체 없는 공포심 위로 다져진 의지가 솟았다. 몇 번의 망설임이 모여 어설픈 용기가 되고, 어설픈 용기는 의지의 실루엣을 그려낸다. 그리고 의식은 색색의 의지로 그 속을 칠해놓은 디테일이다. 다시 말해, 의식은 새로 고쳐 가지고 싶다 하여 덥석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터치로 완수해 내는 집합체인 것이다.
이제 나는 어설픈 용기로 운동을 시작했으니,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그려가고 있다. 아무래도 무의식은 닿기 힘든 곳에 있는 것이다 보니, 역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운동을 하며 밀어붙여볼 생각이다. 무게가 더해질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해볼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숨겨둔 진심에 다가가볼 것이다. 의식적으로 좋은 마음과 행동들이 쌓여 무의식의 영역까지 밀려들어갈 때, 빗물에 마른땅에 베어 들듯 나의 저 먼 진심과 깊은 무의식도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가져본다.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은 운명이 된다.
(Until you make the unconscious conscious, it will direct your life and you will call it fate.)
C.G.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