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이킷 40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수술실에서 만난 생명의 감각

by 청빛 Jan 31. 2025

 암에 걸리기 전,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 속에서 종종 방황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물음은 언제나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해답은 늘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암이라는 중대한 상황에 직면하고 투병을 시작하자, 그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오히려 살아야 할 이유가 더욱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수술을 앞둔 밤, 병원 침대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원과 수술을 앞두고, 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작은 나는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느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친구가 선물해 준 나태주 연필화 시집을 뒤적이다가 한 시에 마음이 닿았다.

 어딘가 묘하게 애걸하는 듯한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눈물 한 방울 훔치며 시집을 닫았다. 그리고 불이 꺼진 병동에서 노트와 연필을 꺼냈다.

떠오르는 대로 내게 짧은 쪽지를 쓰며 수술 전날 밤 마음을 다독여 본다.      

내가 항상 곁에 있어줄게..

나 스스로를 작게 여기지 않을게..

조용히 되뇌며 무거운 밤 잠이 들었다.        


수술 날 아침, 현석이는 수술 시간 두 시간 전부터 병원 간호사실 앞 소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 간병 병실에는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었지만, 복도 소파에서 면회가 가능했다. 수술 날 현석이가 나의 옆을 지켜주러 왔다. 반가움에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흘렀다. 누군가 내 곁을 함께 해준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수술 시간이 되자 간호사들이 내 병실 침대로 왔다. 나는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까지 도착했다. 깊은숨을 내쉬었다. 수술실에 도착해 수술대로 옮겨진 후, 간호사가 안내 사항을 전하며 내 팔과 다리를 침대에 고정시켰다.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도 말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그저 온몸의 힘을 빼고 이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놓자, 어딘가 모르게 번지는 자유와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 곁에 있는 간호사와 의사가 눈에 들어왔다. 한 간호사는 나에게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의 차가운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체온이 내 마음을 감싸주는 듯했다. 나는 이 공간 속에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느꼈다.     

수술실의 기록수술실의 기록

     


나는 살기 위해 여기에 있고, 그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이곳에 있다.     


지금 여기, 그저 살아 있다는 것


그 속에서 생명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존재하며 이 끝없는 연결 속에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생명은 하나로 움직이며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큰 생명에 의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이상한 순간, 걱정이나 두려움은 어느새 한편으로 흘러내렸다. 마취로 정신이 멀어지기 전, 이 짧은 순간에


 “살아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수술은 네 시간 반이나 걸렸다. 수술이 길어지자 혼자 기다리던 현석이는 나를 맞이하던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느낀 조마조마한 마음을 생각하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고, 오른쪽 난소를 절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암의 전이 여부는 며칠 후에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현석이를 집으로 보내고 나서, 나는 이동 침대와 들것을 통해 보호자가 없는 병실로 옮겨졌다. 그곳으로 돌아오자 곧바로 외로움이 밀려왔다. 외로움은 마치 추위처럼 내 몸을 파고들었다.  


저녁 8시, 수술의 통증으로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내 몸이 춥지 않도록 이불 두 개를 따뜻하게 덮어주었고, 수면 양말도 신겨주었다. 그 손길에 안도감을 느꼈다. 맑은 얼굴을 가진 20대 간호사는 밤새도록, 두세 시간마다 내 방에 들러 수액 상태를 확인하고 체온을 체크해 주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간호사들은 병실의 차가운 공기를 따뜻함으로 채워주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암투병 후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