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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일

by 청빛 Feb 14. 2025


  암 진단 소식은 마치 평화로운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지금까지 지켜온 안정감과 평온함을 흔들어 놓았다.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던 삶이 어느 순간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느낌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내 몸이, 삶의 터전이,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했다.


나는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왔다. 잘 기능하고, 건강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그중 하나였다. 그동안 건강한 신체와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30대에 암이라는 중병이 나를 압도하자, 외적 조건들은 마치 연기처럼 쉽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이라는 잣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고 애썼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픔을 가진 존재로서 나 자신을 진솔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때때로 아픔을 숨기고, 민낯을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내 마음속의 고통을 꺼내놓는 것은 내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쌓아 올린 방어막들이 결국 나의 진정한 모습을 가리고, 내 영혼을 더욱 나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을까.. 금기처럼 여겼던 아픔은 깊고 어두운 곳에 묻혀 있었다.


 아픔을 가진 또 다른 존재로서의 나를 얼마나 외면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밤이다.


병원의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드는 동안, 나는 내 안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된다.                          


"아픔을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또 다른 내가 아픈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그날 밤 불이 꺼진 병원의 침대에 앉아 노트와 펜을 꺼내 들었다. 나는 나직이 나에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사랑하는 나야

너무 힘들 때면, 또 한 번 나를 안아주는 것을 잊지 말자

항암치료로 몸이 지치고 아프고 힘든 날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이제는 고통이 나를 더 이상 부끄럽게 하지 않도록 내가 옆에서 지켜주고 보듬어줄게

그 안에서 나의 진실을 만나고, 나를 더욱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한번 찾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

이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이 한밤중,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마음을 다해 안아주었다.


‘아픔을 껴안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나에게 낼 수 있는 진실한 용기이자 사랑이었다.



 





문득, 아픔을 지닌 나의 진솔한 목소리가 이 세상의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될 때. 그 고통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나에게 다가와 과거 자신이 어떻게 적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폐암 수술을 하신 한 여성 분은 벨리댄스를 추며 우아했던 순간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필라테스 강사로 활동하신 환자분은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자신의 아름다운 바디 프로필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지금도 너무 아름다우세요”라고 말하며, 그들의 몸과 마음을 안아주었다. 그들을 안아주는 것은 나약한 나를 위로하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각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따뜻한 진심을 나누는 과정.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서로를 연결 짓는 실타래였다.


내 아픔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품에 안으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내 존재를 진정으로 살아나게 한다.

고통을 나누는 데 필요한 용기가 나에게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병원 퇴원을 하루 앞둔 밤, 나는 나를 다독이기 위해 잠들기 전에 노트와 연필을 꺼내어 가만히 끄적여 보았다.

독백독백



삶을 산다는 건 깨어지는 나와 계속해서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삶이 우리에게 놓는 도전과 시련 속에서 우리는 때로 어떤 상황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며 그 깨어진 조각들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해내는 과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닐 것이다.


그 속에서 때로 나와 더 깊이 연결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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