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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번째 항암

by 청빛


내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는 몸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존재로 자라왔다. 때로 아픔을 통해 깊은 사랑을 배우기도 했다.


그 모든 만남과 이별, 기쁨과 상처는 언제나 몸을 지나 나에게 다가왔다.

몸은 단순히 신경계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감정과 기억이 얽혀 있는 필연적인 동반자로서, 내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는 청각이 예민한 편에 속했고, 떨리는 목소리에서 들려오는 감정을 잘 읽어냈다. 누군가의 기쁨이나 아픔, 촉감으로 전해 오는 자극 하나에도 내 감각을 모두 깨워낼 수 있었다.

따뜻한 손길, 발끝에 스치는 바람,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포옹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내 존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내 몸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었다.


하지만 지금 항암제를 마주하는 순간, 내 몸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던 내 몸에서 두려움의 벽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항암 치료는 깊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곤 했다.


간호사들은 수술용 장갑과 방호복을 착용하고 항암제를 조심스럽게 다뤘다.

나는 항암제를 맞는다는 사실 앞에서 스스로 내 몸에 제대로 동의를 구했는지 모르겠다. 암진단 이후 모든 순간이 나를 압도했다. 그저 의사와 간호사가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주인공인 듯 보였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보호자가 없는 간호간병병동에 홀로 입원했다. 첫 번째 항암 치료를 받던 날, 약물이 내 몸속으로 들어간 지 약 30분이 지났을까. 오른쪽 팔에 링거를 단체 화장실로 가던 중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철퍼덕 쓰러졌다. 약물 쇼크가 온 것이다. 내 앞의 시야가 흐려졌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한 여름의 조례 시간에 쓰러지던 한 여학생을 보며 그러한 상황은 내 것이 아닐 것이라 여겼다.

한 때 수영선수였던 나는 체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매일 쉬지 않고 1km를 수영했고 고된 훈련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이 있었다. 그러나 항암 약물 앞에서는 그 힘조차 무의미해졌다,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나는 3박 4일 동안 매일 3종류의 항암제를 맞았다. (시스플라틴, 블레오마이신, 에토포시드) 4주 간격으로 총 여섯 번을 맞을 것이다.

항암제가 주입되는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몸을 흐르는 항암제와 이 몸이 세계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모든 외부의 소음과 번잡함이 멀어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쓸쓸하지만 생생한 내 존재였다.


약물에 취했는지 입원기간 내내 무거운 졸음이 쏟아졌다. 매일 여덟 시간 동안 항암제 링거를 맞았다. 눈을 떠보면 회진차 주치의 선생님이 내 앞에 보였다.

다시금 눈을 감는다.


내 안의 불안함과 두려움, 낯선 느낌을 내려놓을 곳이 없어 나는 내 몸과 조우한다.


고통이 결코 나를 나약하게 만들지 않기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나는 나지막이 몸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이 작은 소리조차 내 안의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나의 세포가 그것을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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