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다. 누군가의 기쁨이나 아픔에도 온몸의 감각이 먼저 깨어나곤 했다.
때로는 아픔을 지나며 사랑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 배웠다. 만남과 이별, 기쁨과 상처, 그 모든 순간은 언제나 내 몸을 통과해 나에게 닿았다. 그 열림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항암제를 마주하는 이 순간, 내 몸은 어느새 움츠러들었다. 간호사들은 수술용 장갑과 방호복을 착용하고 항암제를 조심스럽게 다뤘다.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이 약의 무게를 더 또렷하게 드러냈다.
첫 항암 치료를 받던 날, 약물이 내 몸에 들어간 지 30분쯤 지났을까. 오른쪽 팔에 링거를 단 채 화장실로 가던 중, 식은땀이 흐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약물 쇼크였다. 시야가 흐려지고 복통이 몰려왔다. 그때 나를 향해 달려오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날 밤. 간호사들은 밤새 병실을 드나들었다. 혈압을 재고, 맥박을 확인하고, 수액의 속도를 조절했다. 창밖은 깊은 밤이었고, 병실에는 희미한 불 및만 남아 있었다. 보호자 없이 입원했지만 그 밤만큼은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졌다. 말없이 건네지는 손길 하나하나가 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살짝 따뜻해졌다.
그 밤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병실 안에는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와, 수액이 조용히 흘러드는 기척만이 남아있었다.
살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내 몸이 사실은 오랜 시간 묵묵히 버텨주며 나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마음 한켠이 서서히 젖어들었다. 어느새 눈가도 뜨거워졌다.
항암제가 몸에 들어오는 동안 눈을 감으면, 내 몸 곳곳을 흐르는 약물이 온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소음과 번잡함은 멀어지고 오직 나의 숨과 맥박만이 또렷해졌다. 그 고요함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입원하는 내내 무거운 졸음이 쏟아졌다. 매일 여덟 시간씩 링거를 맞고, 가끔씩 눈을 떠보면 담당 선생님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도 암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계셨다. 선생님의 눈빛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어떤 단단함이 있었다. 아픔을 통과해 본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조용하고 깊은 온기였다.
반복되는 치료와 통증 사이에서,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조금씩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 몸과 마음은 때로 낯설고 두려웠다.
숨겨졌던 두려움과 낯선 감정들이 내 안 깊은 곳에서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낼 때면 그것은 마치 내면의 어두운 부분과 마주하라는 삶의 부름과 같았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 나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나는 3박 4일 동안 매일 3종류의 항암제를 맞았다. (시스플라틴, 블레오마이신, 에토포시드)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이 이름들이 이제는 나와 함께 걷는 동행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 시간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4주 간격으로 여섯 번의 치료가 남아있었다.
항암제를 맞는 동안, 이 약물이 내 몸 구석구석에 빛처럼 스며들어 암세포를 조용히 정리해 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하루를 보낸다. 따뜻한 빛이 천천히 어둠을 밀어내듯, 이 약물도 그렇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암 치료가 꼭 싸움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힘을 쓰고 있는 이 몸이 제 방식으로 회복해 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몸이 스스로 지닌 치유의 힘을 믿어보는 일, 그리고 끝까지 이 몸의 편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맞이하는 항암제이지만, 모든 것이 제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
항암제도, 내 세포도, 내 몸도, 지금의 나도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다.
나는 내 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우리, 끝까지 함께 가보자. 내가 너를 놓지 않을게.”
내가 건네는 말들이 가슴 깊이 돌아와 나를 단단히 품어준다.
이 길이 아무리 고되고 힘겨워도, 나는 내 몸에게 더욱 굳건한 사랑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이 숨이 계속 이어지는 한, 나는 내 몸과 이미 함께 이 여정을 건너고 있다. 아픔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는 몸처럼
나도 끝까지 나 자신을 놓지 않고 지켜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