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니 작은 것 하나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았다. 오늘은 간호조무사님이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데리러 와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녀의 능숙하면서도 부드러운 손길이 마치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듯했다. 5일 만에 느끼는 상쾌함이었다. 머리를 감겨주는 동안 나는 마치 오랜만에 햇살을 맞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도움을 받는 것을 어려워했다. 타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삶을 경험해 왔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나 아닌 이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 도움에 감사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수술 이후 가스가 나오지 않아 7일 동안 물과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가스가 나오는 것까지 확인해야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간호사는 내가 얼마나 잘 걸었는지 안부처럼 물어보며, 걷는 것이 가스 배출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수술 부위의 쓰림 때문에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나는 수술한 부위를 쓰다듬으며 내 몸에게 "조금만 더 힘내자, 함께 걸어보자"라고 신호를 보내었다.
내일은 내 생일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생일만큼은 퇴원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온 마음을 가득 채웠다.
병원에 갇혀 이런 아련한 표정으로 생일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밤 11시, 최소한의 불빛만 켜진 5층 복도를 20바퀴나 돌았다. 생일날에는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걷기가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정말 다행히도 생일 전날 밤 가스가 드디어 나왔다.
얼마나 기뻤는지!!!! 수술하고 7일 만에 감로수같은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아, 정말이지 살 것 같아!"
물을 마시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물이 식도를 따라 천천히 퍼져가는 감각이 실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링거로 수액이 들어오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살아있음의 감각이었다.
입원한 후 처음으로 몸과 마음이 설레인 체 잠이 들었고, 그날 밤 드디어 링거 바늘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7시 반, 간호사 세 분이 내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환한 미소로 누워 있던 나를 부드럽게 일으켜주는 그 순간, 한 분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식판을, 다른 한 분은 생일 축하 카드를,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열렬히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를 전해주었다.
수술에서 깨어난 지 8일 만에 먹게 되는 아침, 그리고 나의 기적같이 맞이한 나의 생일.
오늘, 나는 이곳에서 잊을 수 없는 생일을 맞았다. 간호사들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는 내 마음을 감동으로 가득 채웠고,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식판 속에 담긴 하얀 미음과 미역국, 그리고 반찬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첫 끼였다. 그 순간, 내 마음은 경건한 감사로 가득 차올랐다. 나는 숟가락으로 미음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하얀 쌀미음의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을 지나 혀끝으로 전해졌다. 입안에서 미음을 머금으니 따스함이 퍼져왔다.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씹을 것 없는 미음을 여러 번 꼭꼭 씹어가며 음미했다. 마치 난생처음 이유식을 맛보는 듯이, 처음 접하는 음식을 정성껏 대했다.
입가에는 연신 기쁨의 미소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미음을 바닥까지 남김없이 긁어먹으며, 한 끼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햇살, 비, 바람, 흙, 공기 - 어느 하나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우주의 축복을 받아 태어난 쌀. 그 쌀로 지은 밥을 마음을 다해 먹으며, 우주의 사랑이 내 몸에 온전히 흡수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쌀처럼 나 또한 우주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눈물은 감사의 눈물로 흐르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호흡하기. 이 생존과 일상에서 느끼는 순수한 경험은 감사와 하나가 되어 있었고, 사랑은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숨어 있었다.
한때, 나는 산속의 수행 도량에서 합숙하며 알아차림 명상(sati)에 집중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 후 몇 년간 주말마다 그곳을 찾아 몇 시간씩 명상을 하며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명상 중, 밥시간이 되면 숟가락을 쥐겠다는 의도부터 시작해, 숟가락으로 밥을 뜨고 씹고 삼키는 매 순간을 온전히 음미하며 지켜보곤 했다. 틱낫한 스님은 이를 ‘마음 다함 먹기’라고 부르셨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점차 알아차림의 힘이 약해졌다. 나는 다시금 대부분의 시간을 습관적으로, 무의식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곳 병원에서 알아차림의 힘은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 힘은 본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주의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투병 생활을 하며, 나는 일상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다시금 깊이 느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순간의 따뜻함, 그 작은 빛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느끼는 것도 일상의 소중함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작지만 큰 행복이 그 어느 때보다 깊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