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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수술실에서 만난 생명의 감각

by 청빛


살아 있음은, 어쩌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사랑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암에 걸리기 전,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 속에서 종종 방황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물음은 언제나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해답은 늘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암이라는 중대한 상황에 직면하고 투병을 시작하자, 그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오히려 살아야 할 이유가 더욱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수술을 앞둔 밤, 병원 침대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입원과 수술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나는 어린아이가 된 것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 친구가 건네준 나태주의 연필화 시집을 천천히 넘겼다. 그러다 한 시 한 편에 마음이 걸려 멈췄다.
그 시의 숨결 속에서, 누군가가 이 순간을 나와 함께 해주길 애원하는 듯한 내 안의 두렵고 외로운 마음이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을 훔치고 시집을 덮었다.

그리고 나는 노트와 연필을 꺼내, 떠오르는 대로 내게 짧은 쪽지를 썼다.

내가 항상 곁에 있어줄게..

나 스스로를 작게 여기지 않을게..

그렇게 조용히 되뇌며, 수술 전날, 무거운 밤의 가장 깊은 고요 속으로, 나는 잠이 들었다.


수술 날 아침, 현석이는 수술 시간 두 시간 전부터 병원 간호사실 앞 소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 간병 병실에는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었지만, 복도 소파에서 면회가 가능했다. 반가움에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흘렀다. 수술 시간이 되자 간호사들이 내 병실 침대로 왔다. 나는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까지 도착했다. 깊은 숨을 내쉬었다. 수술실에 도착해 수술대로 옮겨진 후, 간호사가 안내 사항을 전하며 내 팔과 다리를 침대에 고정시켰다.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도 말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그저 온몸의 힘을 빼고 이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놓자, 어딘가 모르게 번지는 자유와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 곁에 있는 간호사와 의사가 눈에 들어왔다. 한 간호사는 나에게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의 차가운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체온이 내 마음을 감싸주는 듯했다. 나는 이 공간 속에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느꼈다.


수술실의 기록

나는 이 이상한 순간, 걱정이나 두려움은 어느새 한편으로 흘러내렸다. 마취로 정신이 멀어지기 전, 이 짧은 순간에 “살아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르륵 눈이 감겼다.



수술은 네 시간 반이나 걸렸다. 수술이 길어지자 혼자 기다리던 현석이는 나를 맞이하던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느낀 조마조마한 마음을 생각하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고, 오른쪽 난소를 절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암의 전이 여부는 며칠 후에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수술실 앞에서 현석이를 잠깐 마주한 뒤, 나는 이동 침대에 실려 조용히 보호자 없는 병실로 옮겨졌다.

그곳으로 돌아오자 곧바로 추위와 외로움이 밀려왔다. 내가 느끼는 것이 추위였는지, 외로움인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감정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저녁 8시, 수술의 통증으로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내 몸이 춥지 않도록 이불 두 개를 따뜻하게 덮어주었고, 수면 양말도 신겨주었다. 그 손길에 안도감을 느꼈다. 맑은 얼굴을 가진 20대 간호사는 밤새도록, 두세 시간마다 내 방에 들러 수액 상태를 확인하고 체온을 체크해 주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간호사들은 병실의 차가운 공기를 따뜻함으로 채워주었다.

그들은 나의 가족이 아니었지만, 그 밤, 누구보다 내 곁 가까이에 있었다.

정들 겨를도 없고, 이름조차 모를 그들의 손길 속에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다정함을 배웠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방식으로, 나를 돌보고, 안아주고, 지켜주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외로움은 분명 덜해졌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반드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가끔은 이름 모를 타인의 조용한 손길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그날 밤, 나는 천천히 호흡을 들이쉬며 병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수술의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내 안에 살아 있는 어떤 감각을 붙잡았다. 마취가 깨어나는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통증’이 아니었다.
“살아 있음은 참으로 귀한 것이구나..”라는 새로운 감각이었다.


숨쉬기 조차 힘겨웠지만, 그 숨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나의 심장은 소리없이 조용히 뛰고 있었다.

고통은 분명히 나를 짓눌렀지만, 그 안에는 미세하게 살아 있는 어떤 떨림이 있었다. 통증은 생명이 내 몸 안을 지나간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아프다는 것조차 내겐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한밤중, 병실을 조용히 오가던 간호사들의 발소리와 조심스러운 손길이 그토록 따뜻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수액을 살피고, 체온을 재던 그 손길은 마치 “괜찮아요, 당신은 지금 여기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몸이 있기에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살아 있음의 증거처럼 내게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기로 했다.


삶의 의미는 거창한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숨 쉬는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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