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용기와 따스한 격려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암’이라는 질병은 삶을 벼랑 끝으로 이끄는 듯 느껴지게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끝자락에서, 우리는 외면해 왔던 두려움과 상처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비로소 지금껏 잊고 있던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암은 조용한 손짓으로 저를 삶의 가장자리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제 안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질문 하나를 건네 왔습니다.
“지금, 당신은 진실로 살아가고 있나요?”
그 질문 앞에서 저는 멈춰 섰니다. 도망치지도, 서둘러 답하려 하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저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존재로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정은 무언가를 더 얻어내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미 제 안에 있었으나 미처 귀 기울이지 못했던 힘을 다시 기억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고통과 상실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고, 나의 존재를 다시 따스하게 품어 안는 나날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투병의 시간은 때로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서 있는 듯한 감각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기대지 못한 채 오롯이 스스로를 붙들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고립감’이라는 감정의 무게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힘겨운 순간조차, 제 안의 생명은 단 한 번도 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쉼 없이 저를 품고, 지탱하고,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통해 제가 배운 가장 깊은 진실은 몸이 단 한순간도 저를 떠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조 개의 세포들이 말없이 저를 살리고 있었고, 심장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저를 이 자리에 존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숨은 마치 부드러운 바람처럼 조용히, 그러나 강한 의지로 저의 소중한 존재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저는 실로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모든 생명들이 말없이 저에게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사랑은 이미, 여기 있어.”
그 응원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제 안에서, 이미 제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저 멀리 바깥에서 애써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제 안에서 고요히, 단단하게 함께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항암 치료는 단순히 고통을 견뎌내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몸의 가장 진실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은 아프고 병든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소중한 깨달음 이후로, 저는 삶을 그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살아 있음을 온전한 진동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암은 저의 몸을 약하게 만들었을지라도, 제 영혼은 오히려 더 깊고 넓게 깨어났습니다. 그 고통은 저를 무너뜨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제 안에 본래부터 자리했던 빛을 다시 기억하게 하기 위한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이 여정은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존재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조용히, 깊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마주한 고통과 침묵, 작은 미소와 따스한 눈물의 순간들은 이제 모두 저만의 삶의 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있는 그대로의 저로 이 삶을 다시 살아내고자 합니다.
제가 바로 사랑이었음을 기억하면서.
그것이 제가 암이라는 여정을 통해 발견한 삶이며,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은 삶입니다.
저는 제 삶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