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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맞이한 입원실 풍경

by 청빛
생명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것들 속에 깃들어 있다. 숨, 물, 밥 한숟갈,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수한 작은 기적들 속에.


몸이 아프니 작은 것 하나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았다. 오늘은 간호조무사님이 병실로 들어와, 침대에 누운 나를 부드럽게 이끌어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녀의 능숙하면서도 부드러운 손길이 마치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 주었다. 5일 만에 느끼는 상쾌함이다. 머리가 감겨지는 그 순간, 나는 오랜만에 햇살을 맞이한 풀잎처럼 가만히 숨을 고르며 그 감각을 온몸으로 느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혹여 타인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스스로를 감추던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무는 시간 동안 나는 조금씩 알아차리고 있다. 나는 이미 많은 이들의 손길 위에서, 수많은 도움 속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었음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사랑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가만히 품는 것이다.



수술 이후 가스가 나오지 않아, 어느덧 7일째 물도 밥도 먹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가스가 나와야만 퇴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간호사는 오늘도 다정한 안부처럼 내게 물었다.
“오늘은 얼마나 걸으셨어요?”
걷는 것이 가스 배출에 도움이 된다며, 어제처럼 천천히라도 걸어보자고 웃어주었다.

나는 수술 부위의 쓰림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채, 몸을 조심스레 웅크려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짧은 거리조차 내게는 고된 순례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수술 부위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조금만 더 힘내자. 우리, 함께 걷자.”

내일은 내 생일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첫 숨을 쉬었던 날. 그 날만큼은… 퇴원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온 마음에 조용히 가득 차올랐다.


병원에 갇힌 채, 이런 아련한 표정으로 생일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 벽과 커튼 사이가 아닌, 햇살과 바람 속에서 숨 쉬고 싶었다.

밤 11시, 최소한의 불빛만 켜진 5층 복도를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스무 바퀴를 돌며 나는 간절하게 소망했다. 저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 !

내 기도가 닿았을까!

기적처럼— 그날 밤, 드디어 가스가 나왔다.

나는 너무 기뻐 숨이 찰 지경이었다. 수술 후 7일 만에,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정말이지, 살 것 같아!”

물이 식도를 따라 천천히 흘러내리는 감각은 놀라울 만큼 생생했다.
입안 가득 번지는 그 차고 투명한 감촉, 그것은 단순한 수분이 아니라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생명의 메시지 같았다. 링거로 들어오던 수액과는 전혀 다른, 이것은 살아 있음의 감각이었다.


입원한 후 처음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 설레는 밤이었다.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쉴 수 있다는 것, 병원 밖의 상쾌한 공기를 마쉴 수 있다는 것, 링거 바늘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당연히 누릴 수 있었던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다는 것이 진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다음 날 아침 7시 반, 간호사 세 분이 조용히 내 병실로 들어섰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한 분은 누워 있던 나를 조심스레 일으켜 세워주었고,
다른 한 분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식판을, 그리고 마지막 한 분은 두 손 가득 박수를 담아
생일 축하를 전해주었다. 모든 것이 말없이 눈부셨다.


수술 후 8일 만에 마주한 아침. 그리고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기적처럼 맞이한 나의 생일이었다.

간호사들이 기쁜 목소리로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는 그 어떤 천사의 오케스트라보다 아름다웠다.
그들의 눈빛, 따뜻한 손길,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축복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세상의 축하 중 가장 다정한 노래가, 그날 아침, 나를 위한 선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식판 위에는 하얀 미음, 미역국, 그리고 소박한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수술 이후 처음 맞이하는 식사이다.

나는 한참동안 식판을 바라보다가, 경건한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하얀 쌀미음을 한 술 떠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을 스치고, 혀끝으로 퍼져오는 따스함에 몸과 마음이 조용히 떨려왔다. 그저 삼키기엔 너무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씹을 것이 없는데도, 나는 여러 번 꼭꼭 씹으며 그 미음을 정성껏, 감사하게 음미했다.마치 생애 처음 이유식을 맛보는 아기처럼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번졌고, 나는 바닥까지 남김없이 그 한 끼를 다 먹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한 끼의 식사’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삶을 껴안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라는 것.


햇살, 비, 바람, 흙, 그리고 공기—
그 어느 것 하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우주의 섬세한 조율 속에서 태어난 한 톨의 쌀.

그 쌀로 지은 따뜻한 밥을 천천히, 마음을 다해 씹으며 나는 마치 우주의 사랑이 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드는 듯한 깊고 충만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그 쌀처럼 나 또한 우주의 보살핌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고요한 눈물이 흘렀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호흡하기. 이 생존과 일상에서 느끼는 순수한 경험은 감사와 하나가 되어 있었고, 사랑은 때로 말없이,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모습으로 일상의 구석구석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한때, 나는 산속의 수행 도량에서 합숙하며 ‘알아차림 명상(sati)’에 몰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주말이면 어김없이 그곳을 찾아
몇 시간씩 고요히 앉아 일상 속 알아차림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명상 중 밥을 먹는 시간은 하나의 의식처럼 다가왔다.
숟가락을 쥐는 의도부터 시작해, 밥을 뜨고, 씹고, 삼키는 그 모든 과정을 의식의 숨결로 지켜보며 조용히 음미하곤 했다. 틱낫한 스님은 그것을 ‘마음 다함 먹기’라 불렀다.
그 말처럼, 나는 한 끼의 식사 속에서 온전한 삶의 감각을 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 복귀하고, 분주한 삶의 물살에 휩쓸리자
그 고요한 힘은 점차 약해졌다.나는 다시, 대부분의 시간을 습관과 무의식의 안개 속에서 떠다녔다.

그럼에도, 이 병원이라는 멈춤의 공간에서 알아차림의 힘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그 힘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으며,
다만 내가 잠시 주의를 거두었을 뿐이라는 걸—
나는 다시 깨닫게 되었다.


투병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일상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다시금 깊이 느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의 따뜻함이 온몸에 내려앉을 때—
그 작은 빛이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놀라운 선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조용히 느낄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귀한 일인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작지만 깊은 행복들이 예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그리고 가슴 깊이 와닿는다.

모든 것이 멀리 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일 뿐이었다.


눈을 뜨고 숨을 쉬며,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는 이 단순한 하루가 얼마나 많은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축복받은 존재라는 사실도.

삶은 언제나 나를 품고 있었고, 사랑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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