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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나의 독산동>

위대한 유산으로 탄생한 <나의 독산동>

by 김경애 Feb 23. 2025

 우연히 발견한 <나의 독산동>       

 

  제가 사는 아파트 옆에 서울기록원이 있습니다. 2019년 봄날에 개원한 이곳은 서울의 문화기관이자 전문 공공아카이브로서 서울의 기록과 시민의 기억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입니다. 2층에는 카페와 작지만 예쁜 중정, 기획 전시실, 기록열람실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손님들이 오면 서울기록원이 마치 저희 집인 양 데려가 자랑하는 곳이지요.


  기록열람실은 일반인들이 자료를 신청하여 열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더불어 그림책과 일반 도서를 비치해 두어 깔끔한 열람석에서 편히 볼 수도 있습니다.  

  작년 가을, 무시로 서울기록원을 드나들던 저는 기록열람실에서 <나의 독산동>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책의 배경은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80년대의 독산동입니다. 그림책을 보고 나자 거무튀튀한 공장 동네가 제게는 환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에게 이 그림책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기도 하였지요.   


   

표지 그림   


  미진산업인가요? 출입문 옆에 매달린 낡고 초라한 간판으로는 회사 이름을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단층짜리 작은 공장건물 창문으로 흰머릿수건을 쓴 여러 여성들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강아지까지 대동하고 한 꼬마가 엄마를 찾아 공장으로 왔네요. 제 딴에는 뭔가 급한 일이 생겼나 봅니다. 공장 밖 골목에는 몇 개의 화분이 있습니다. 주황색 꽃을 예쁘게 피운 화분도 있네요. 크레파스로 그린 표지 그림은 어둡고 거칠지만 왠지 정겹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표지를 넘기면 양면 가득 남루한 마을이 나옵니다. 전깃줄은 복잡하게 얽혀있고 굴뚝으로 연기를 뿜는 작은 공장들도 여럿 보입니다. 독산동이 공장지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네요. 단박에 ‘독산동’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언제, 어디서든 재미를 찾아내는 아이들  


   주인공 은이는 받아쓰기에 계속 틀립니다. 그래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왜 틀렸는지 알면 된다”라고 말해주는 아빠가 있으니까요.


브런치 글 이미지 2

     

  어느 날 답을 고르는 사회과 시험을 봅니다. 이웃에 공장이 많으면 생활하기 어떨까?라는 문제에 은이는 자신 있게 ‘매우 편리하다’를 고릅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어쩌지요? 붉은 색연필로 사선이 휙 그어져 시험지가 돌아왔네요. 은이는 매우 편리하다가 정답이 아니냐고 질문합니다. “아니야. 공장이 많으면 시끄러워서 살기가 나쁘잖아. 이 동네처럼.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굳이 이 동네처럼 이라 못 박는 선생님이 야속합니다.   

  

   하굣길, 납득이 되지 않은 은이는 공장이 많은 독산동의 좋은 점을 꼽아봅니다. 승환이 엄마 아빠는 공장에서 일하다 잠깐 와서 밥을 주고 숙제를 봐줍니다. 고무줄놀이를 하다 다친 명주는 이웃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명주 엄마는 무릎을 닦아주며 함께 와 준 은이에게 착하다며 아이스크림을 사주십니다. 인형공장이 있어 할머니들은 부업을 할 수 있습니다. 잘못 만들어진 인형은 모두 아이들 차지입니다. 인형 눈이 없어도 이웃에 있는 단추 공장의 불량단추는 딱지만큼 흔하여 아이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형을 가지고 있지요. 야근을 하는 부모님들이 집에 오시지 않아도 무섭지 않습니다. 공장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요.     

 

   은이는 혼란스럽습니다. 자기 동네가 시끄러워서 살기가 나쁘다는 것을, 자신이 나쁜 동네에 산다는 걸 선생님이 가르쳐 주기 전에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먹은 뒤 은이는 질문합니다.

“아빠, 교과서도 틀릴 수 있어?”

 “엄마, 선생님도 모를 수 있어?” 

  엄마, 아빠는 곧장 대답하지 않습니다.

“넌 교과서가 틀린 것 같니?”

“넌 선생님이 모르는 것 같니?” 

 지혜롭게 되묻습니다. 은이는 이웃에 공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며 교과서와 선생님이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은 “우리 동네는 우리 은이가 잘 알지”라 답해주시며 파일 맨 앞에 이 시험지를 끼워줍니다. 이 시험지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요. 반공 글짓기 장려상은 시험지로 덮여버렸네요.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다는 것을 확인한 은이는 편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도 우리 선생님도 잘 모른다. 공장이 많은 우리 동네는 참 좋다.’라고 생각하면서요.       


브런치 글 이미지 4


 


 위대한 유산   

  

  저는 꽤 오랫동안 독서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모임 이름은 거창하게 ‘오거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자는 뜻이지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다가 끝내 부활을 못해 안타까운 모임입니다.      

   2019년 10월의 오거서 선정 도서는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이 소설은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무엇이 위대한 유산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소설이지요. 주인공 핍은 물질적인 ‘부’가 아니라 매형인 조가 자신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이 위대한 유산임을 깨닫습니다. 가난한 대장장이라 무시했던 매형에게 진정한 신사의 모습을 찾아낸 것이지요.

  그날 우리는 독후활동으로 자녀들에게 어떤 위대한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딸아들이 모두 성인이었기에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정서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부모’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가 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라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독산동>을 읽으며 자연스레 소설 <위대한 유산>이 떠올랐습니다. 글을 쓴 유은실 님은 1974년생으로 다섯 살 때부터 스무 살까지 독산동에서 살았답니다. 처음 본 ‘사회과 고사’ 시험지를 간직하도록 도와주신 부모님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었다네요.     

   지혜롭게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부모의 위대한 유산 덕분에 행복한 유년기를 기억하며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지요.        


  여러분은 어떤 위대한 유산을 받으셨나요? 또 어떤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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