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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Oct 10. 2022

8. 어떤 체질이건 기본은 음식이다

먹을 수 있는 건 적고 필요한 열량은 많아서 고민이로구나



나에게 맞는 음식 찾기



처음 한약을 먹을 때 가려야 하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소화능력이 떨어져 미음만 먹는 환자식으로 먹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누워만 있는 환자가 아니라서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는 충분히 채워야 하니 매 끼니마다 고민 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소고기 죽 외에는 없을 정도였다.

한약을 먹고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더라도 식습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소화를 못 시키는 것은 아니나 소화를 시키는데 체력 소모가 남들보다 심하기 때문에 장에 머무는 시간이 짧고 적은 양으로 열량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생야채와 나물 등 섬유질은 풍부한 재료는 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소화하는데 에너지 소모가 많아 푹 익혀 먹는 게 좋다고 했다. 기력이 약해졌을 때는 소고기가 좋다지만 오히려 돼지고기가 먹고 난 뒤 속이 편하게 편하게 느껴졌다. 소화가 잘되고 속이 편한 음식으로 알려진 것과 내가 실제로 느끼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결국은 직접 먹어보고 몸상태를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취를 하던 시절, 요리에 흥미가 없어 그냥 재료를 익혀먹는 수준으로 끼니를 챙겨 먹었었다. 나름 골고루 먹으려고 탄수화물과 고기, 야채와 과일, 이렇게 세 가지는 매 끼니 갖추어 먹었는데 나이가 젊었던 것도 있지만 그렇게 먹는 게 저에너지 인간에게 적합한 식단인 듯하다.

알고 보니 각 장기마다 소화 효소가 달라 소화시키는 음식이 다른데 섞인 재료가 많을수록 소화 시간이 길어진다고 하니 최대한 단순하게 먹는 게 답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한편으로는 의외로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속이 편하고 좋았다. 먹는데 많은 움직임이 필요 없기도 하고 칼로리가 높아서 그런지 랫동안 든든하기도 했다. 속 부대낌이나 식사 후 피로감도 적었다. 


매번 자신의 먹은 음식에 따른 몸의 상태와 반응을 살피는 게 피곤할 수도 있지만 초반에만 파악해 놓으면 대충 알 수 있다. 어차피 건강식으로 매 끼니를 챙겨 먹는 사람도 없 보통 상식과는 다를 수도 있는 내 몸에 대해서 알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솔직히 저에너지 인간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어떤 음식이 잘 맞고 어떤 재료가 힘이 되는지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리하는 체력조차 아끼자



요리할 때도 최대한 체력 소모를 줄이고 싶었다. 자취를 시작하면 제대로 요리해서 멋지게 차려 먹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본디 요리나 음식 욕심이 별로 없었던지라 가뿐하게 그 욕구를 내려놓았다.

퇴근길에 고기 한팩 사다 소금만 뿌려서 굽고 청경채 등 볶아 먹을 수 있는 채소에 소금이나 굴소스로 간단히 간을 하는 식으로 간단하면서 고기와 야채를 함께 먹도록 했다. 탄수화물은 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소량의 쌀밥을 먹거나 빵, 면으로 섭취했다. 빵은 밀가루보다는 통곡물이 속이 편하고 맛도 좋아서 애용했다.


요리하는 게 즐거운 사람은 요리라는 활동이 에너지를 채워주니까 상관없지 싶다. 요리라는 활동이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면 꼭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자. 재료만 제대로 익혀먹어도 살아가는데 큰 무리가 없다.





저에너지 인간이 원하는 식사 환경



저에너지 인간이 식사로 인해 불편을 겪는 이유 중 가장 곤란한 것은 식사 시간과 횟수일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일지언정 생각이 많았다면 그것만으로 아침에 보충한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리고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진다. 딴에는 다음 끼니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보충했다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급정거가 잦았던 버스에서 에너지를 많이 써버렸을 수도 있다. 사소한 일 하나로도 에너지가 쭉쭉 빠져나가 버려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배고플 때 먹으면 되니 문제가 안되는데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는 학교나 회사에서는 조금씩 자주 먹기가 곤란하다. 어쩔 수 없이 본인 양보다 많이 먹게 되고 메뉴 선택권도 없어 오후가 되면 식곤증과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차라리 편의점 샌드위치나 삼각김밥을 먹으면 속이 편할 텐데 그렇게 먹으면 "끼니를 고작 그걸로 때운다"는 주변의 잔소리를 감당해야 한다. 래서 햄버거 같은 부피는 작지만 고칼로리인 음식이 편한지도 모르겠다. 서랍에는 항상 초콜릿과 사탕을 채워 넣는다.


저에너지 인간으로 살려면 소화력을 키우거나 주변 소리는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줄 아는 멘탈이 필수인 거 같다. 많이 먹으면 그걸 소화시키느라 에너지를 더 써버리는 저에너지 인간에게 잘 먹지 않아서 힘이 없다는 잔소리는 살해시도처럼 느껴진다. 자에게 맞는 적당량이라는 게 있고 성인이면 대부분 자신의 적당량을 알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요즘 소식좌들을 다루는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현상이 매우 반갑다. 개개인의 먹는 양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무조건 많이 먹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적게 먹든 맛없게 먹든 하루 한 끼만 먹든 거기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일단 좀 친해지고 서로에 대해서 안 뒤에 해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밥 먹을 때 좀 편하기만 해도 식사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가락도 가끔 무겁게 느껴지는 마당에 말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도 에너지 등급을 매겨서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으면 좋겠다. 효율 낮은 5등급 인간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친구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고용하고 싶지도 않을 것 같다. 결국 최소 3등급인 척하는 5등급 인간들이 생겨나면 상황은 변치 않겠구나 하며 생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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