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는 집에 와서 그 상태로 침대에 널브러졌다. 울음을 쏟고 식음을 전폐하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소리도 못 내고 울다가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울다가 결국 몇 날 며칠을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회사에는 간신히 병가를 내고 쉬었다. 평소 성실하고 모범적인 태도로 임했기에 상사도 모처럼 아프다는 말에 수긍해 주었다.
선호는 침대에 누워서 끊임없이 나락 속으로 떨어졌다. 다시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세 번이나 연애를 실패했다는 건, 자신은 연애불능자처럼 느껴졌다. 부모님도 없는 선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던 그녀들이 모두 떠나갔다. 자신은 정말 구제불능이란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몇 번이나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누워서 한참을 고통 속에서 헤매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 일어나서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다가 다시 절망에 빠져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부쩍 수척해진 얼굴로 일어난 선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탁자 위에 올려둔 돌이었다. 선호는 돌을 본 순간, 마음의 일렁임을 느꼈다. 민혜와 함께 해변가에 놀러 갔다가 하트 모양이 예뻐서 가져온 돌이었다. 이 돌이라면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자 위의 돌을 침대 옆 협탁으로 옮겼다.
그리고 돌을 하염없이 애틋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달콤한 사랑에 빠졌다. 이제 더 이상 이별은 없을 거라고 나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남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선호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돌에게 입맞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돌아와서도 제일 먼저 돌을 찾아가 뽀뽀를 했다. 사랑의 속삭임도 잊지 않았다. 회사 부장은 선호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나 봐?”
“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요”
“헤어졌다고 한 게 엊그제 아닌가?”
“네, 민혜는 헤어졌어요. 그리고 저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래, 잘해봐.”
부장은 혀를 끌끌 차며 자리로 돌아갔다. 선호는 하루하루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다. 돌을 보면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TV를 보았다. 자신은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선호는 어느새 민혜는 까마득하게 잊었다. 그리고 돌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의 사랑, 돌멩이. 너의 이름은 돌멩이라고 지어줄게. 촌스럽게 돌멩이가 뭐냐고? 왜, 귀엽잖아. 막 세련되고 유행 타고 그런 이름은 별로야. 난 그냥 길가에 채이는 돌멩이 같은 평범한 존재가 좋아. 욕심도 없고 위선적이지도 경망스럽지도 않고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 돌멩이, 넌 나에게 그런 존재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