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향

시나몬(Cinnamon)

by 권도연

오전 8시 25분 55초. 고속터미널 역.

지하철 문이 열렸다.

그녀가 탔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에게서는



'좋은 향'이 났다.






짧은 생머리에 베이지색의 에코백을 맨 그녀가 나타나면 8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밤새 야근 차림 그대로 출근하는 넥타이 맨 회사원,

불경 외듯 졸리운 강사 목소리에 짜증이 목까지 차오른 학생,

육아에 살림에 지쳐 앉자마자 눈을 감은 워킹맘도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정도였다.(과장하자면)


오늘도 그녀는 같은 향을 풍기며 차에 올랐다.



시나몬롤 빵에서 날 법한 달콤하고 고소한 향

+

마른 자작나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향

+

갓 마른 이불빨래에서 나는 포근한


이었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런 느낌..


어느 날은 운 좋게도 그녀가 내 옆에 섰다.


향수일까. 샴푸일까. 아님 섬유유연제?


최대한 들키지 않게, 최대한 그녀가 불쾌하지 않도록

킁. 킁.


훅 하고 풍기는 것이 아니라 은은히 배어 나오는 듯했다.

가까이 있으니 나에게까지 그 향이 옮겨 붙는 기분이었다.


퇴근 후 일부러 백화점을 찾았다. 물론 목적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아.. 왜.. 그런 향 있잖아요."


나는 내가 아는 최대한의 명사와 형용사, 동사까지 동원해 그 향을 그려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프랑스 향수회사에서만 5년 넘게 일했다던 직원은 그 비슷한 향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 표현이 미천한 건가.

내 코가 기억하는 향과 직원이 생각하는 향이 다른 건가. 나중엔 내 기억에 대한 기능까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객님께서 찾으시는 향은 그러니까 우디 계열일 듯하구요. 시나몬, 사향 계열도 섞인 거 같구요. 머스크 향에 가까울 수도 있겠어요."


"아뇨 아뇨. 그런 인공향이 아니라 그니까 은은하고 달콤하고 그랬다니까요."


진열되어있는 향수 전부를 시향해주던 직원은 결국 참았던 말을 터뜨렸다.


"그냥 물어보시죠, 그분한테요."






괜히 밤부터 잠을 설쳤다.

뭐라고 말을 걸지.

날 미친 사람으로 착각하진 않을까.

그녀만 듣게 살짝 묻는 방법은 없을까.

귀에 속삭여볼까....


"무슨 향수 쓰세요?"

아님

"그쪽 냄새가 좋아요...."


...??!!!!!



긴장된 기분으로 익숙한 위치에 섰다.

지하철이 움직이고, 그 시간이 됐다.

8시 25분 55초.

그녀가 탔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난다, 냄새가.

킁. 킁. 킁.


!!!


그녀가 내 옆에 섰다.

어랏 그녀와 내 앞 자리가 동시에 비었다.

오 신이시여!!! 저에게 이런 로또 같은 행운을!!!!


짝사랑하던 남자 옆에 우연히 앉는다면 이런 기분이려나.


그녀의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찾느라 가방을 열어 뒤적이는 순간

은은하던 향은 훅! 하고 풍겨왔다.


부스럭부스럭.

한 참을 뒤적이던 그녀가 가방에서 소리 나는 그것을. 꺼내 들었다.


냄새의 정체는.

투명한 비닐 안에 구겨져있던 그것은.






메이플 시럽을 칠갑한 시나몬롤.

진짜 시나몬.






아침마다 포근하고 달콤한 향으로 날 유혹하던 그녀의 정체는 아침마다 시나몬 가루가 듬뿍 발린 빵을 아침으로 먹는 '배운 분'이셨다!





아침 갓 구운 빵은 언제나 진리다. -프랑스 파티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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