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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Dec 05. 2023

7. 잃어버린 탄피를 찾아서.

[단편소설] 탄피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꼬챙이로 좀 팍팍 쑤셔봐라, 좀!"


행정관의 우렁찬 호통이 들렸다. 그와 다른 군악대원, 아니 사단 전체 인원이 부대 내 산비탈 여기저기 삐뚤삐뚤 서 있었다. 꽤 가파른 비탈이었으나 행정관은 아랑곳 않고 사병을 올려 보냈다. 어디서 구해온 건지 알 수 없는 꼬챙이를 병사들에게 쥐어주며 흙에 꽂아가며 무언가를 찾으라 하였다. 때로는 낙엽쓸기용 큰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찌르란다. 누군가는 삽으로, 다른 이는 괭이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흙더미를 뒤졌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른 봄의 강렬한 햇살은 초록 전투복을 입은 젊은이의 목덜미를 따갑게 때리고 있었다. 짜증 나는 오후였다.


어제 휴가를 나와 집을 토사물로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는 오늘 오전에 급하게 부대로 복귀했다. 어제저녁 군악대장의 전화에는 납득할만한 이유가 빠져있었다. 부대에 큰일이 나 사단장 명으로 휴가자와 외박자 전원 복귀해야 한다는 설명뿐. 멀리 마산이 고향이었던 최현주 병장만 이동 시간을 고려해 오늘 저녁까지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었다. 물리적으로 잡혀온 건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강제로 끌려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금니를 깨물고 오전에 위병소를 통과한 그는 두 손을 부르르 떨며 다른 작업자들이 있는 산비탈로 가 본부대장에게 휴가 복귀 신고를 하였다. 부대와 가장 가까운 곳이 고향이던 우하경 일병은 이미 다른 군악대원과 함께 산비탈에서 수색 중에 있었다. 서글픈 뒷모습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봄이 오며 얼음이 녹아 조금은 부드러워진 흙을 엎을 때는 그나마 덜 힘들었다. 그늘진 골짜기 쪽에 배치된 병사들은 아직 얼음을 머금은 땅을 쑤시고 뒤집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손바닥과 팔, 허리 여기저기 무리를 했다. 아마 저녁때쯤 되면 손에 물집이 잡히지 않을까.


"총알이 200발이나 분실 됐대."

"127 연대 장교 누구누구가 가지고 튀었대."

"누군가 땅 속에 묻었대."


작업을 시작한 이틀 동안 부대 내에는 여러 가지 소문 만이 무성히 떠돌았다. 그러나 누구도 정확히 무엇을 찾는지 알지 못했다. 총알이 흩뿌려진 건지, 아니면 어떤 상자에 담겨 있는 건지, 땅에 묻혀있는 건지, 어딘가에 숨겨진 건지. 수뇌부는 찾아야 하는 것이 정확히 알리지도 않은 채 천여 명의 병사들에게 수색작업을 시켰다. 모든 일과업무를 멈춘 채. 얼마나 촌각을 다투는 일이기에.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그를 포함한 군악대 1 생활관 사람들인 분노와, 어이없음과, 납득되지 않는 표정으로 산비탈에 서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과연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탄약 창고를 털겠는가.


"10분 간 휴식."


그는 손에 묻은 흙을 털고 나무에 기대어 앉아 전투복 상의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른 군악대원들도 나무 그루터기나 낮은 바위 위, 혹은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담배를 태웠다. 수색 도구들을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 투덜거리거나 웅성거리는 소리, 전투화가 흙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값싼 휴대용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들이켰다. 형채가 없는 연기는 입 뒤편과 기도를 거쳐 폐를 한 번 훑고 다시 되돌아 나왔다. 속에 들이마신 연기는 입에서만 머물렀던 연기와는 색과 질감이 다르다. 담배를 피워 본 사람만이 아는 차이가 있었다.


"영창에 있을 라일종이 훨씬 편하겠구먼."


김이환 병장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다른 군악대원들이 낮게 흐흐흐 웃었다. 그 역시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천천히 들이마시곤 연기를 코와 입으로 내뱉었다. 그래. 영창에 있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아무 목적 없는 무의미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으리라 그는 생각했다. 마약이건, 도박이건, 알코올이건, 자극의 노예가 된다면 즐기는 그 순간은 그래도 기쁘지 않을까. 이렇게 고통만을 요하는 '작업'에 의미까지 없다는 건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삶보다 더 허무하다. 젠장.


태우던 담배가 꽁초로 짧아질 무렵 그는 머리 한쪽이 아파왔다. 어제 마신 술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아서였을까. 순식간에 통증은 임계치로 치솟았고 한겨울과 같은 추위가 몸을 감쌌다. 야상을 입었지만 오들오들 오한은 막을 수 없었다.


"자, 작업 시작하자. 각자 위치로."


그는 비틀비틀 다시 자신의 꼬챙이를 박아 둔 장소로 걸어갔다. 두통은 어지러움을 동반했다. 꼬챙이를 땅에 몇 번 꽂아보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비틀. 안 되겠다. 그는 분대장에게 몸이 좋지 않다 말하고 허락을 얻어 산비탈에서 내려왔다. 배수로를 건너 뜀과 동시에 아래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아. 어제도 토했는데. 그는 오늘 아침 부대 근처 터미널 앞에서 먹었던 컵라면의 니글거리는 짠맛을 느꼈다. 그는 좁은 배수로에 토했다. 수색 작업 중이던 곳과는 꽤 거리가 있어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이틀 연속으로 토하는 건 어린 시절 배탈이 났을 때 이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그런 감상 따위는 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속은 이상하게 뒤집어져, 배가 부른 것 같기도,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였다. 저기 다른 병사들이 쓰고 있는 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지끈거리는 두통은 계속되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콧물도 나왔다. 볼 수는 없지만 얼굴은 아마 검붉게 물들었을 테다. 입 안은 토사물의 기분 나쁜 느낌으로 찝찝했다. 어딘가 씻을 데가 없을까. 저기 공터 한편에 낡은 수돗가가 눈에 띄었다. 관리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길을 따라 공터를 천천히 가로질러 수돗가로 걸어갔다. 오래 사용하지 않았는지 네모나게 둘러싼 시멘트는 여기저기 무너져 내려 있었다. 그는 낡은 수도꼭지를 돌렸다. 다행히 물은 잘 나왔다. 두 손을 모아 쏴아 쏟아지는 물을 받았다. 차가웠다. 두 다리를 양 옆으로 벌리고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숙였다. 두 손에 모인 물을 어지러운 얼굴에 끼얹었다. 깜짝 놀랄 만큼 시원한 물이 눈물, 콧물, 침 등으로 범벅되어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그는 연거푸 물을 끼얹었다. 코도 풀고 입도 헹궜다. 그러다 아예 틀어진 수도 아래로 머리를 가져다 대 물로 머리와 얼굴 전체를 적셨다. 으아아아. 차가운 물이 목덜미까지 닿자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시원함이 추위로 바뀔 무렵 그는 고개를 옆으로 빼고 머리와 얼굴에 묻은 물을 양손으로 닦아 내어 여러 번 털었다. 조금은 정신이 돌아왔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무너진 시멘트 더미 위에 앉았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동안 앉아서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있자니 조금씩 통증과 오한이 잦아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젖은 머리를 두 손으로 털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낡은 수돗가 왼편으로 역시나 낡아서 쓰지 않는 치장창고 하나가 있었다. 오래전에 지은 건물인지 슬레이트로 되어 있는 처마는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벽의 페인트는 벗겨져 캔버스의 마른 유화 그림의 주름 같았다. 격자 창문으로 깨진 불투명한 유리가 달려 있었다.


그는 공터 저 멀리 아까 내려왔던 산아래로 누군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행정관과 군악대장이었다. 반 정도 벗겨진 이마부터 목까지 전부 짙은 갈색의 행정관은 군악대장보다 키가 작았다. 오뚝이 같은 몸매였지만 그의 눈빛은 20년 넘는 군 경력의 호락호락지 않은 인물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보다 머리 하나 더 크고 그만큼 머리가 큰 군악대장은 상대적으로 흰 피부색을 지니고 있어 실내에서 생활하는 군악대의 특징이 두드러졌다. 그는 혹시 들키면 농땡이를 부린다 한 소리를 들을까 치장창고 뒤편으로 몸을 피했다.


잠시 후 수돗가를 지나는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무언가 빠르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뜻 들어도 목소리에는 깊은 노기가 서려 있었다.


"아니. 이렇게 바쁜 때에 애들을 저렇게 막 굴리면 어떡하냐고."

"그러니까요, 형님."

"어우. 성질 같아선 그냥 들이받는 건데, 씨팔."

"엊그제 대장님이 사령부에서 들으셨다는데, 이게. 제대로 불출대장이 관리가 안 돼서 그런 걸 수도 있다던데요."

"그건 또 뭔 개소리야? 그럼 누가 빼돌린 게 아니라는 거야?"

"아니,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하. 진짜 욕 나오네. 그럼 제대로 원인파악도 안 하고 사단장이 막무가내로 시켰다는거야?“


두 부사관은 수돗가를 지나 멀어져 갔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 휴가를 반이나 자른 것도 모자라 남은 휴가도 못 쓰고 복귀하게 만든 게 사단장이라니. 이런 개놈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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