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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Dec 29. 2023

9. 수색 중단과 아폴로 눈병.

[단편소설] 탄피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아주 많이 각색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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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 정적이 흘렀다. 산나무 위 까치와 까마귀만이 간혹 꺄악하고 울었다. 고꾸라진 사단장의 기괴한 뒷모습은 키스해링의 그림 속 상징화 된 인간 같았다. 끄응하는 신음과 함께 사단장의 사지가 꿈틀거렸다. 그제야 현실을 자각한 간부들이 당황 속에서 사단장에게로 뛰어 내려갔다. 병사들은 그저 놀라거나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흠칫 놀라 마법을 시전 하느라 올린 손을 급히 내렸다.


그늘진 산비탈 아래의 땅은 분명 한없이 딱딱했으리라. 사단장은 자신의 몸뚱이가 바닥에 닿기 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본인이 사단에 무슨 똥을 뿌리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본부대장을 포함하여 함께 순시에 나섰던 간부들이 사단장을 부축했다. 그는 크게 몸이 상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제대로 서지 못했다. 누군가 의무대에 전화하고 있었고 나머지 간부들은 사단장을 어찌어찌 공터 바닥에 앉혔다.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지, 아니면 마음 한 구석에 통쾌함이 서려서인지, 사단장을 아끼거나 그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어서인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일부의 당황과 일부의 공감에 대한 고통 정도만이 그들의 표정 속에 담겨있을 뿐이었다.


소란은 길지 않았다. 곧 의무대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간부 여럿과 의무장교, 의무병이 사단장을 실었다. 언덕 위로 뻗은 도로를 따라 멀어져 가는 앰뷸런스 차량 위로 늦겨울이자 초봄의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행정관은 의욕을 잃었는지 나무에 팔을 기대고 짝다리 자세로 담배를 빨고 있었다. 그 옆에 군악대장도 경사진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같이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큰일이 벌어진 후에 오는 무기력인가. 손가락으로 경쾌하게 꽁초의 불을 쳐낸 두 부사관은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행정관은 큰 소리로 외쳤다.


“작업 종료. 바로 막사로 복귀하자!”


일과시간이 끝나기엔 아직 일렀다. 그래도 이 모든 일의 원흉이 고꾸라졌다는 승리감은 행정관이 병사들을 어여삐 여길 마음의 여유 정도는 부릴 만큼은 되었다. 작업 도구를 챙겨 산비탈에서 내려온 사병들은 먼지를 털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전투화 끈을 다시 매었다. 짐짓 경쾌한 느낌이 드는 소란스러움도 잠시, 그들이 떠난 산비탈에는 파 뒤집힌 흙더미와 고요함만 남았다. 그리고 작고 예쁘게 파해쳐진 구덩이도.


막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마력의 존재를 깨닫고 여러 마법을 배웠으며, 때로는 어떤 자리를 피하기 위해, 때로는 누군가를 골탕 먹이기 위해 몰래 마법을 써왔다. 그러나 강력한 힘으로 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마법은 애초에 쓸 수도 없었고, 그럴 의욕도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라일종을 영창에 집어넣고, 지금은 사단장을 무너뜨렸다. 사단장의 피해는 얼마나 될지 알지 못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높이에 그런 방식으로 떨어진다면.


이래도 되나. 어느 순간 통쾌함을 위해 일을 저지른 자아의 한 면은 뒤로 물러나고 도덕을 강조하는 또 다른 자아가 그에게 죄책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모질지 못했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영창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벽을 보고 있는 라일종도. 다리일지 허리일지, 혹은 또 다른 곳일지에 큰 통증을 느끼며 신음하고 있는 사단장도. 그는 남몰래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당장 행동에 옮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인 금방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컴컴해지는 하늘 아래 막사로 돌아가는 비포장길에서 마법을 쓰지 않겠다 다짐한다.




봄의 색과 향기가 짙어지며 여름을 준비할 때 즈음 그는 진급 테스트에서 2킬로미터를 뭐 빠지게 달렸고, 방독면 사격 만발이란 기적을 이뤘다. 그는 다음 달이면 상병을 단다. 그날 고꾸라진 사단장은 부상으로 민간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참모장이 당분간 사단장의 지휘를 위임받았다. 부대 내 모든 이에게 다행스럽게도 참모장은 그래도 상식적이었다. 그는 전 부대의 수색 작업을 멈추게 하였고, 탄약 관리 대장과 그 외 행정 서류를 가져다 조사하였다. 그를 포함한 군악대원 전원은 일상으로 복귀했고, 그날 그가 가졌던 죄책감을 조금은 덜게 만들었다.


영창에서 돌아온 라일종은 얌전해졌고 그는 파트 후임이 한 명 늘어 드디어 스네어 드럼을 연주하게 되었다. 막내였을 때 팔이 빠져라 무거운 심벌을 쳤고, 맞후임을 받고는 거대하게 허리와 배를 짓누르는 베이스 드럼을 때렸다. 그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고 화려한 스네어 드럼은 그의 성미에 딱 맞았다. 그는 손목 근육을 열심히 단련하고 유연하게 하려 노력했다. 이제 반년만 지나면 군악대 최고 선임이 된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그날 아침 눈뜰 때까지.


침상에서 정신을 차린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풀로 뻑뻑하게 위와 아래 눈꺼풀을 붙인 듯했다. 겨우 눈을 비비고 눈을 떴지만 불편한 간지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전 사단 내 다른 연대에서 아폴로 눈병이 유행이란 소문을 들었다. 아. 눈병인가. 아침 점호를 하면서 부대 내 여기저기 눈병이 의심되는 병력에 대한 보고가 잇따랐다. 같은 막사를 쓰는 본부대, 헌병대, 화학대, 통신대, 의무대에서 대략 스무 명 정도로 파악되었다. 분명 전염병에 대한 매뉴얼이 있을 텐데. 모두들 너무 서툴렀다.


어영부영 그가 속해 있던 본부대에서 증상이 있는 병사들은 우선 간단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취미활동을 위해 마련한 휴게실로 집합했다. 급하게 버스 한 대를 배차받아 근처 안과로 진료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그는 한쪽 침상에 우두커니 앉아 눈이 뻑뻑한 채 버스를 기다렸다. 불편했다. 휴게실 문에 붙은 작은 창문으로 행정관과 보급관의 시커먼 얼굴이 순간 나타났다. 감염이 두렵지 않은가. 그들은 양손에 껍질이 벗겨져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양파 반 개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보급관의 팔과 옆구리 사이엔 작은 붉은 플라스틱 통이 끼어 있었다. 고추장이다.


“야들아. 양파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아폴로 눈병 낫는단다.”


행정관은 제일 앞에 앉아 있던 그에게 양파를 하나 건네려 했다.


“행정관님. 그러다 눈병 옮습니다.”


행정관 뒤에 멀찍이 선 보급관이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내가 바이러스 이겨.”


어련히 그러겠지. 그는 속으로 코웃음 쳤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저거 많이 매울까.


“일병 임재중. 하나 먹어봐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상병 진 재중이. 자자. 최중사 고추장 가져와봐.”


행정관은 보급관이 뚜껑을 연 플라스틱 통 안으로 양파 반 개를 통으로 넣어 붉은 고추장을 듬뿍 찍었다.


“자자, 먹어봐.”


그는 입을 크게 벌려 행정관이 넣어주는 양파를 통째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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