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할머니와 나란히 서서 재료를 반죽하고, 초승달 모양의 작은 칼로 버터를 잘라 넣고, 갖가지 모양을 찍어내고, 계란 노른자를 바르고, 오븐에 구워내는 과정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지난 일요일 남편의 친어머니인 시어머니 댁에 갔다. 남편과 시누이 바바라도 같이. 간만에 자식들 얼굴을 보시자 어머니가 기뻐하시던 모습. 근래엔 계속 나 혼자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를 방문했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았지만 역시 남편과 시누이와 북적거리며 방문하는 것이 더 좋았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40년 가까운 부산 생활을 접고, 서울에 사는 언니 곁으로 곧 이사하실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그러셨을까. 큰 딸 옆으로 간다고 기뻐하시던 모습에 나 역시 콧날이 찡하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얼마 전에 파파와 집에서 크리스마스 쿠키 플랫첸을 구운 후 어머니의 레시피가 궁금해졌다. 정확한 계량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것쯤이야 인터넷에 더 잘 나오니까. 그보다는 아이가 할머니와 나란히 서서 재료를 반죽하고, 초승달 모양의 작은 칼로 버터를 잘라 넣고, 갖가지 모양을 찍어내고, 계란 노른자를 바르고, 오븐에 구워내는 과정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할머니가 계셔서 좋은 것이란 그런 추억을 눈처럼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게. 할머니의 레시피가 언제나 시원시원하고 쉬웠듯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 싶을 때 할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반죽이많아서 점심 먹기 전에 1차로 구워내고 점심 후에 다시 2차를 구웠다. 아이가 파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카락을 얌전하게 묶고, 할머니와 사이좋게 쿠키를 굽는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할머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거기다 음식까지 잘하시고, 아이와 함께 일 벌이는 것을 번잡하다 여기지 않으시는 할머니란. 아이가 자라 할머니보다 키도 몸집도 커진 후에도 저렇게 할머니와 서 있는 뒷모습을 보고 싶다. 부쩍 거동이 불편해지신 양아버지를 돌보시느라 평소 건강하시던 분이 감기까지 걸리신 게 걱정되는 요즈음이다.
여름 이후 양아버지와 나는 평화롭게 지내는 편이다. 미운 정도 정인가 보다. 독일 와서 자꾸 만나다 보니 서로의 성격에 익숙해진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원래 성격이 괄괄하시고 에너지가 넘치시는분인데 근래에는 기력이 많이떨어지셨다. 만 90세를 앞둔 1,2년 전이 가장 힘들었는데 그때는 걸핏하면 화를 내셨다. 본인 스스로 감정 조절이 안 되시는 것 같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난 50만 되어도 그렇던데. 90이 예사 나이인가. 본인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나이 아닌가. 거기다 양아버지 두 딸이 우리보다도 늦게 아이를 얻어 한 마디로 너무 늦게 할아버지가 되셨다는 것. 손주들과 마음껏 놀아줄 수 없다는 슬픔!
요즘은 양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경지까지 되었다. 전직 치과 의사셨던 이분의 장점은 자칭 문학과 클래식 음악과 예술 분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목을 가지셨다는 것인데, 그분의 불행은 이것을 맘껏 논할 대상이 주변에 없다는 정도. TV에서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클래식 공연과 발레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신 후 다 함께 감상하기도 하고, 흑백으로 찍은 어린이용 고전 영화를 녹화해 두셨다가 아이와 한 편씩 보시기도 한다. 이런 할아버지 절대 흔하지 않다. 내가 특히 감동한 것은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무렵 양아버지께서 호로비츠 모스크바 공연을 보여주실 때였다.
호로비츠에 대해 '단 한 소절만을 들어도 그 비범함은 쉽게 느낄 수 있다.'라고 했던 누군가*의 표현은 사실이었다. 1986년이었다. 80을 훌쩍 넘긴 그가 꿈에도 그리던 모스크바에서 60여 년 만에 가진 실황의 제목은 'Horowitz in Moscow'. 연주는 아름다웠다. 마른 장작 같은 거장이 연신 땀을 닦으며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두 손을 들어 스카를라티 소나타를 칠 때는 눈물이 났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의 연주는 손가락이나 몸이나 영혼이 아니라 그 모든 것과 함께였다. 단 한 번 TV로 실황을 본 것뿐인데 단번에 호로비츠가 좋아졌다. 그리고 양아버지께 오래오래 감사했다.
드디어 할머니의 쿠키 완성! 그런데 정작 아이가 더 좋아한 건 할머니가 며칠 전에 구워놓으신 반달 모양의 설탕을 듬뿍 바른 쿠키였다. 점심 식사 후 디저트로 나온 것을 혼자서 얼마나 집어먹던지!
점심은 소고기에 버섯과 파인애플을 넣은 요리였다. 아이가 자꾸 파인애플을 파파 접시에 옮겼다. 집에 와서 남편이 말했다. 예전 자기 엄마의 음식이 훨씬 덜 복잡하고 좋았단다. 양아버지와 재혼 후 레시피가 변했다나. 파인애플 같은 건 안 넣었단 뜻이겠지? 남자들은 저렇게 에둘러서 디스를 하는구나. 좋아! 파인애플 같은 건 절대 안 넣을 테니 걱정 말라구. 난 맛있기만 하던데. 참고로 호로비츠의 이태리 아내였던 완다는 요리 솜씨가 형편없어서 그가 매번 화를 삭여야 했다고. 덕분에 피아노 칠 시간이 더 생기는 셈 치고 체념했다나. 거장의 아내로 사는 일의 고단함.
쿠키를 식히려 게스트룸에 들락날락하다가 창가에 놓인 어머니의 소파를 보았다. 정원이 내다보이고 난방 기구가 있는 창가에서 매일 일기를 쓰시는 분. 어머니가 안 보실 때 살짝 사진을 찍어두었다.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나만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