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잃고 떠난 하와이에서 찾은 인생의 의미들
하와이.
그래 나는 하와이에 있었다.
모든 걸 잃고
하와이로 떠나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하는 중이다.
어떻게든 다시 나를 되찾고 싶은 것이었다. 사랑도 희망도 꿈도 미래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생의 실패자로 남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친 건지 묻고 또 물었다. 혼자 씩씩거리고 하늘에 대고 원망하고 분노에 차오르기도 하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마음 한편 서랍에 고이 접어 넣고 닫아두었다. 꺼내기 너무 힘들어서 억지로 꾸역꾸역 담아 한 켠에 고이고이 접어 두었었다.
마음이 메어졌으니까 내가 살면서 겪었던 아픔 중 가장 큰 아픔이었으니까... 잊으려고 온갖 일을 다하고 했지만 쉽지 않았었으니까... 정신없이 살기도 하고 뛰면서 육체적 힘듬으로 정신적 힘듦을 잠시 잊는 법도 터득했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단 1분도 달리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보며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아니 뭐야, 1분, 그러니까 60초도 내가 못 뛴다고?' HEL
좀 어이없었다. 나름 관악산 날다람쥐(초등학교 때) 였는데.. 1분을 못 뛰다니.. 못 뛰어서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1분 그리고 조금 더 2분, 5분, 10분.. 내가 뛰기 시작한 건 그 힘듬에 매료된 순간이었고 조금씩, 내가 뛰고 있음에도, 힘들지만 계속 뛸 수 있는 나를 찾고 나니 스스로 자신감도 생겨 뿌듯함이 느껴져 좋았다. '아 나 조금씩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구나'
어떻게든 매일 운동을 해야겠다고 확실하게 다짐을 하게 된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뛰니까 너무 힘들어서 그 순간에는 정말 아무 잡다한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 좋았다.
나와 스스로 '할 수 있어' '아니 뒤지겠는데?' '아니야 할 수 있다니까' '아닌 거 같아 그만해' '아니야 진짜로 다 왔다 저기까지만' '힘내 좀 만 더 달리자' '오 할만해' '재밌네' '발걸음이 가벼워졌어!!!!!' 대화하며 어떤 한계점(임계점?)을 지나면 마치 뇌가 뛰고 있는 것에 적응이라도 한 듯 아드레날린이 막 분출되는 시점이 있었다. 그 아드레날린을 느끼기 시작하면 뛰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부스터가 달린 것 같은 신남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게 또 그냥 좋았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서핑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해변에서 서핑보드를 들고나가는 사람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도망가기 일 쑤 였다.
난, 서핑이란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2016년 추석날 심심해서 검색을 했었다. 여자 혼자 놀러 가기 좋은 곳 - 강릉 - 바다 - 양양 - 양양서핑 키워드 검색의 흐름은 대충 이랬던 것 같다. 그리곤 양양서핑 리스트 중 한 곳을 골라 전화로 오늘 여자 1명 게스트룸 자리 남았냐고 물어봤다. 딱 한자리 남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지금 갈게요" 하고 나는 처음으로 서핑을 하러 강원도로 향했었다.
거기는 강원도 현북면 양양 죽도해변에 위치한 모쿠서핑샵이다.
내가 처음으로 서핑을 배운 곳 그리고 내가 너무나 존경하는 전 세계에 서핑이라는 것을 알린 듀크 카하나모쿠 이름을 딴, 서핑샵
서핑에 매료된 이유는 그때 그렇게 서핑에 처음 입문이란 걸 한 날, 나는 파도를 느꼈다. 그때 내가 느꼈던 파도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마치.. 말랑말랑한 푸딩젤리 위에서 맨발로 썰매 타는 느낌? 파도가 느렸고 파도의 힘에 내 몸이 실려 나는 마치 곡예사가 된 듯 그 파도의 결에 맞춰 따라갔다.
진짜 신났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었고 그날, 마치 나의 운명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 경험 이후로 나는 매 주말마다 양양 바다를 다녔고 평일에도 가끔 차트 보면 미친 사람처럼 오전에 일 다 끝내고 점심시간에 강원도로 서핑하러 갔다가 서핑하고 저녁 먹고 다시 오기도 했었다. 열정 리아가 서핑에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 분들은 아실 터.. 그렇게 2016년에 시작한 서핑은 해외 서프트립도 자주 다니며 내 인생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게 해 주었다.
2016년 서핑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서핑한 횟수를 손꼽으라고 하면 나는 한국보다 하와이에서 서핑한 횟수가 훨씬 많다. 하와이를 안 좋아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 이기도.
아무튼, 그렇게 서핑을 좋아하는 내가 정말 바다에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매직아일랜드를 뛰며 볼스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멈춰 서서 한참 바라보고 다시 돌아서 뛰곤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00일 챌린지는 50일이 남았었고 나는 계속 조바심이 낫다. 뭐라도 빨리 잘 해내고 싶은데 뿌리도 없고 싹을 틔우지도 못한 내가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팔다리가 없는데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에 휩쓸렸었다.
그날 아침엔 뭔가 마음이 이상한 날이었다. 그래도 운동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나섰다. 직진을 해야 내가 늘 달리는 코스인데 그날 내 발걸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Kahanamoku Beach와 Fort DeRussy Beach Park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식물이 예쁜 공원에 누워서 하늘과 식물들을 관찰했다. 흔들리는 나뭇잎들 떨어지는 낙엽과 햇살을 맞이하며 혼자 기분 좋아했다.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있었다 감미로운 재즈음악과 아카시아 나무인지 마치 벚꽃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큰 나무 밑에 있자니 이 나무에게 마치 내가 보호받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꽃도 예뻤다 잔디밭 위의 차가움도 느끼며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그런 시간들은 치유의 시간으로 내 마음 저 구석까지 따듯함을 비추어주곤 했다.
때론 머리가 복잡할 때 차를 끌고 다이아몬드헤드 서핑 스폿이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 가곤 했다. 그냥,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위로가 되었다. 저기 멀리 아름답게 부서지는 파도들 그 위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서퍼들, 바람 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들, 깨끗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바닷속 리프들, 때론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는 무지개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다.
내 삶의 방향은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다.
자꾸 넘어지고 실패하는 내 인생은 뭘까..
하루하루 한국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열심히 살았다.
더 노력할 수 있는 걸 했다. 더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아름답게 물들어 가는 하늘은 오늘 하루도 주어진 일을 꿋꿋하게, 보람차게, 잘 해낸 우리에게 수고했다는 찬사가 아닐까?
Isn't the beautifully colored sky a compliment to us for working hard, rewarding, and well done today?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인생의 스스로의 주인공이 되어 하루를 주도적으로 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ven if no one recognizes me, it is enough if I took the lead in the day by being the main character of my life.
2022년, 다시 인생을 살아가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꼬박 1년이 흘러 2023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저의 인생에 소명을 찾고 저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절망에서 단 한줄기 빛도 보이지 않았던 그때, 그 순간에서 하나씩 천천히 실타래를 풀어가며 견뎌왔던 기록들을 브런치에 남기려 합니다.
그 절망 속에서 온갖 세상을 뒤지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시간들 속 어디서 주워들은 한 문장, 한 단어들을 새기며 견뎠습니다. 저의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길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용기 내어 세상밖으로 내보낼 준비를 합니다.
@lia.out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