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개미 Jan 10. 2024

직장인의 삼재, 이런 것까지 극복해야 하나 싶지만

과장님 혹시 삼재 아니에요?


직장인 삼재의 기록


나의 삼재는 1월 1일 자 인사발령과 함께 찾아왔다. 당시 나는 휴가 중이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평소 회사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유명한 선배가 내 직속 상사로 부임한다는 인사발령을 먼저 접한 동료들의 연락이었다. 그 선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본사뿐 아니라 지방에서 근무하는 동료들까지 이를 어쩌냐며 나를 걱정해 주었고, 덕분에 나는 전국적으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새로운 팀장이 부임한 후 나는 거의 매일을 지옥처럼 보냈다. 그는 사소한 일에도 괜한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주로 모두가 듣는 앞에서 "너 책상 빼버린다!"라고 소리를 치며 마치 심각한 사고를 친 것 마냥 망신을 주는 식이었다. 나는 처음엔 주눅이 들어 쭈뼛거리다가도,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이 되어 "이렇게 괴롭히실 거면 그냥 빼버리든가요!"라고 응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시기에 우리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 회사는 막장인가 싶어 정말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참기 힘든 건 따로 있었다. 팀장은 은근슬쩍 업무에서 나를 배제하고, 팀 운영에 관한 사항들도 나를 제외한 사람들만 따로 불러 전달하곤 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회사의 지침이 수시로 바뀌던 시기였기에 꽤 중요했다. 한 번은 팀장에게 팀 차원의 정보는 함께 공유받고 싶다 이야기했더니 "그럼 너도 담배를 피우던가"라며 비아냥 거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생일날에도 나만 빼고 회의실에 모여 생일파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경악을 했다.


마음이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자연스레 몸도 아프다. 실제로 나는 그해 유독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반년 가까이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약으로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의사 내시경을 권했는데, 수면 내시경을 마치고 병원 카운터에서 결제를 하다가 불쑥 화가 치밀어 울고 말았다. 통상 2년에 한 번 회사 건강검진으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것을, 저 망할 팀장 때문에 내돈내산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다 났다. 다행히 심각한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출근만 하면 속이 뒤틀려 매일 죽만 먹고 지냈다.


가장 심각한 사고는 따로 있었다. 그해 말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고작 한 칸짜리 돌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처음엔 정강이 상처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한 시간 즈음 지나자 상처부위가 심하게 부풀더니 걷는 게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날 나는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거쳐 난생처음 신경외과라는 곳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고, 어쩌면 평생 회복 불가능한 정도의 신경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엔 헛웃음이 났다. 미친 거 아닌가?



이런 것까지 극복해야 하나 싶지만


"과장님, 혹시 삼재 아니세요?"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출근한 나를 보자마자 동료가 물었다. 그간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한 동료였다. 돌계단에서 넘어진 날 바닥에 널브러진 나를 기꺼이 일으켜 세워 준 것도, 날아간 휴대폰을 챙겨준 것도 그였다. 동료는 아무래도 너무 이상하다고 하면서, 분명 살짝 넘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로 크게 다칠 일이었냐며 이는 삼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85년생이지만 윤달에 태어난 나는 쥐띠인데, 실제로 그 해는 쥐띠에겐 삼재의 해였다. 그것도 가장 혹독하다는 '들삼재'다. 인터넷을 찾아 삼재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를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쉽게 말해 삼재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재앙의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 삼재는 9년 주기로 찾아와 3년 간 머무르는데, 첫해가 들삼재, 둘째 해가 눌삼재, 셋째 해를 날삼재라 부르고 그 재난의 정도가 점점 희박해진다고. 어쩐지 연초부터 나쁜 일이 끊이질 않더라니.


새해가 오기 전 양양으로 여행을 갔다. 여행에서 만큼은 워낙 즉흥적인 편이라 최소한의 맛집 리스트 정도만 찾아두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안가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휴휴암'이라는 작은 사찰이 나와 잠시 들르기로 했다. 사찰 입구에 있는 귀여운 불상 앞에서 너도 나도 소원을 빌길래 그 틈에 껴서 나도 잠시나마 새해의 소망을 빌어 보았다. 전처럼 복을 많이 달라거나 하는 일이 다 잘되기를 소망하는 대신 "새해에는 그저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빌었다.


올해 나의 목표는 한해를 그저 무사히 보내는 것이다. '아홉 수'라거나 '삼재'같은 이야기는 여전히 미신 같긴 하지만, 삼재의 시작을 혹독하게 보낸 후부턴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삼재 덕분에 알게 된 것도 있는데,인생에서 항상 좋은 시절만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회사생활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 아무리 일에 최선을 다해도 늘 내게 유리한 쪽으로만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삼재가 아니더라도 일터에서 이와 비슷한 시기가 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매사 조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 원로 스님께서 '삼재를 없애는 방법이란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 말씀하셨다는 기사봤다. 삼재는 우리 스스로 소멸시킬 수 있는데,  이를 위해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이 곧 삼재를 날려버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재앙도 없어진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삼재에는 마음도 함께 돌봐야 하는구나 싶다.


안 그래도 힘든 회사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까지 극복해야 하나 싶지만, 결론은 이거다. 삼재 극복을 위해 내가 찾은 방법이란 사찰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한 12,000원어치의 안도감과 남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 매사에 조심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렇게 내게 주어진 마지막 삼재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15년간 기업의 교육담당자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의 일과 삶,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일터의 마음> 연재는 매주 수요일 발행되며 10화로 구성됩니다. 따뜻한 손그림과 담백한 글로 여러분의 출근길을 함께 하겠습니다. 응원금은 저도 불편하고요,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면 힘내서 써보겠습니다 :)


글, 그림: 꽃개미

낮에는 HR 부서 교육담당자로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일기로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 공황장애 에세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

인스타: @sammykhim

이전 02화 괴롭힘 가해자가 되고도 견딜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