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련을 마치고 개운하게 일어나려는데 근처에서 지켜보시던 원장님께 따끔한 조언을 들었다.
"절대 사바아사나 하고 우르드바 다누라를 다시 하면 안돼요. 그러면 기껏 가라앉혔던 몸과 마음을 다시 확장시켜서 긴장시키는 거예요. 꼭 원하면 전굴 자세만 하고 아니면 사바아사나 전에 조금 더 연습을 해봐요."
다같이 하는 수련이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로 끝나면 혼자 한번 더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후굴 자세)로 몸을 주욱 늘린 후 마치는 건 우르드바 다누라가 버거운 내가 찾은 마무리 루틴.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걸 여태껏 몰랐던거다. 초보도 아닌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는 난감한 원장님의 표정에 머쓱해져 몰랐어요하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요가 수련의 마무리는 언제나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다. 말 그대로 송장처럼 팔, 다리를 편안하게 늘어뜨리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은 채 쉬면 된다. 처음엔 이것도 수련인가 당황스럽기도 했고 모든 아사나가 이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다. 담요를 덮고 격하게 뛰는 심장 박동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땀이 식길 기다리며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뿌듯함을 만끽하는 순간은 너무나 달콤했다. 종종 가볍게 코를 골며 깜박 잠이 들만큼.
하지만 동시에 사바아사나가 왜그렇게 중요한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냥 있는 게 무슨 수련이란 말인가.
어느 순간부터 수련 후 사바아사나를 대충 하기 시작했다. 점점 사바아사나 시간이 짧아지고 오히려 그 후 한 두 명씩 수련실을 떠나면 혼자 남아 그날 아쉬웠던 동작들을 복습하는 게 재미있었다.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아 연습하면 왠지 오늘 수련을 내가 제일 열심히 한듯한 유치한 뿌듯함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수련법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의 미련이자 욕심이었을 뿐. 그날의 수련이 얼마나 실패했든 사바아사나와 함께 멈춰야 했다. 남아 있는 아쉬움과 후회도 자연스럽게 흘러나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툭, 내려놓아야 했던 것.
수련 중에 가장 많이 들은 말도 가만히 있어보라는 것이었는데 나한텐 와닿지 않았던 거다. 동작 안에서 잠시만 머무르며 고요함을 느껴보라 계속 말씀하셨는데도 말이다.
가만히 있는 것. 그 잠깐의 정적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시르사 아사나 중에도 흔들리는 팔, 다리만 보았지 정작 가라앉혀야 할 마음은 안중에 없었다. 쉽다 무시했던 사바아사나 수련 중 정말 머릿속까지 가만히 있었나 반성하게 된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건 수련실 밖에서도 마찬가지. 하다못해 요즈음은 텔레비전을 가만히 보는 것조차 상당히 어렵다.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닌 이상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한 손에는 끊임없이 핸드폰을 쥐고 인터넷 장보기나 아이 관련 서칭을 하고 눈에 띄는 네이버 기사들을 클릭해서 맥락 없이 읽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나 생각해본다.
일단 너무 조급했다. 가만히 있기엔 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지나간 일에 자꾸 미련을 두고 다가올 일을 걱정했다. 그러자니 사내 맞선의 신하리도 아니면서 문어발처럼 발을 여기저기 걸고 귀를 팔랑이며 이곳저곳 기웃거렸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가만히 머무는 건 지금 내겐 가장 어려운 일이었던 거다.
원장님께서 왜 그렇게 사바아사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기분. 인위적으로라도 잠시 멈추고 끊는 사바아사나는 불안한 마음에 막무가내로 무엇이든 채우기만 급급한 나에게 무엇보다 꼭 필요한 수련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