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아침 저녁 뿐만 아니라, 이젠 낮에도 겉옷을 챙겨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기억이 닿는 가장 오래 전- 아마도 초등학교 때- 부터, 가을이 되면 유난히 기분이 이상하고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고 그랬었다. 이미 일년이 다 지나간 기분이랄까.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움이 항상 조금씩은 더 컸던 고서니에게, 매 해의 마지막 계절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더위에 지치고 힘들었을지언정, 가을이 코끝의 공기로 느껴지면, 지나간 여름이 오히려 그립곤 했다.
어느덧 올해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윤이에게, 그리고 우리 세식구가 맞이하는 첫 번째 가을이자, (겨울에 태어난 윤이에게는) 네번째- 마지막 계절이다. 그러니 어쩌면 24시간 세 식구 모드의 대미를 장식할지도 모를, 이 계절의 시작을 앞두고 마음이 울렁이는 건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나간 세 번의 계절을 돌아보자면, 한파로 사방이 얼어있던 때에 태어나 겉싸개에 꽁꽁 싸매어져 병원에 다니던 겨울을 거쳐, 생후 50일 즈음 봄을 맞이했다. 미세먼지와 코로나 걱정에 집 안에서만 주로 지냈지만, 함께 봄꽃을 보고, 따뜻하고 찬란한 세상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다 여름의 초입부터 두 달 가까이 다시 병치레로 고생을 하며 더운 계절을 땀과 눈물로 적셔냈다. 이렇게 겨울, 봄, 여름을 지나- 그 사이에 눈부시게 성장한 윤이와 우리는 바야흐로 마지막 계절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제 또 가을이 지나면, 외출할 때마다 집안의 온기와 바깥의 냉기가 두 뺨에서 만나 발갛게 되어버리는 겨울이 오겠지.
그리고 우린 다시 맞이하는 겨울에 첫번째 크리스마스와 첫 생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희한하게도 나는, 이 계절이 아쉽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은 마음이면서도, 다가올 겨울은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일 년 중 가장 짧다는 가을을 타는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괜히 센치해져서는 마음 에너지를 펑펑 다 써버려서 애기 재우고 바로 뻗어버린 오늘. 일어나보니 남편이 그 사이에 청소 빨래 설거지를 모두 마치고 애기 장난감 소독까지 끝내놓았다. (사실 이런 저런 계절이고 나발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남편의 복직이 걱정되는 지금인 것이다. 봄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결국 가을 타는 걸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시간을 더 꽉꽉 사랑으로 채우는 것 밖엔 없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따뜻하고 다정한 남편과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우리 귀염둥이 윤이와 함께, 높고 구름 없는 하늘을 누리며, (다가올 겨울만 바라보며 지나가는 계절로 보내는 대신) 가을만의 정취를 즐겨보리라 다짐해본다.
언제나 잘 자는 우리집 두 남자들, 너무너무 사랑해�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drives out fear, because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The one who fears is not made perfect in love.”
1 John 4:18 NIV